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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중대재해법 하려면 제대로 하자

입력 2021.01.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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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높은 산재사망률
안전장비·처벌의 문제보다
장시간 노동의 결과일수도
산재 실상·원인 더 연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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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회 안팎에서 논란이 됐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이 지난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정의당, 시민단체, 노동단체에서는 이번에 통과된 법안이 원래의 취지가 퇴색된 누더기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준이 원안보다 약화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 후 2년의 유예기간을 둔다는 조항들이 비판의 핵심이다.

중대재해법의 입법이 제기된 배경은 우리나라의 높은 산재율이다. 얼마나 높은가?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인 '사고성 사망만인율'은 2018년 0.51이다. 미국 0.37, 일본 0.15, 영국 0.04보다 높다. 그래서 중대재해법 논의에서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 항상 전제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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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에 가입한 후 많은 경우에 OECD에서 우리의 랭킹이 얼마인지 신경 써왔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간 비교는 중대재해법과 같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법안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취약하며 사실을 호도할 위험성도 갖고 있다.


고용부 자료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통계의 집계 방식이 국가별로 매우 다르다는 점은 일단 무시하고, 모든 국가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지표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럼에도 서로 다른 국가들을 어느 한 가지 측면에서만 비교를 하기에는 경제, 사회에서 역사적 배경까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 지표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 단위의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는 아무리 고급 통계적 분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영국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국가 단위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하는 것을 '캄캄한 방에서 까만 고양이 찾기'에 비유했을까.

예를 들어 산재율은 국가 간 노동시간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표다. OECD 국가의 노동시간과 산업재해 발생률을 비교해보면 두 자료 사이에 뚜렷한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작업장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사고 발생도 더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평균적인 추세로 볼 때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에 비해 다소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 정도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게 나타난다. 오히려 미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노르웨이 등 나라에서 노동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다. 또 우리나라의 산재율 추세를 보더라도 노동시간이 감소한 2003년에서 2017년 사이 놀랍게도 거의 절반가량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높은 산재 사망률이 안전장비, 관리감독, 처벌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쩌면 장시간 노동에서 나오는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의 원인이 장시간 노동시간에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실상과 원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장조사, 통계 구축, 전문가 자문과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


노동연구원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기업의 생산성과 매출에도 심각한 손해를 초래한다. 산업재해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면, 노사 진영을 따지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만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자.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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