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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칼럼

[매경춘추] 사원증을 걸어주며

입력 2021.01.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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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입 사원들에게 사원증을 걸어주는 날이다. 사원증이라야 조그마한 플라스틱 태그에 불과하지만, 100대1 이상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들은 노량진에서, 혹은 카공족으로 몇 년씩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당당한 그들에게, 겸손하게 시민을 섬기라는 꼰대스러운 당부를 하며 태그를 걸어줄 것이다.

신입들을 기쁜 마음으로 뽑아야 하지만 매년 수험장을 둘러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일단 교실 10개 가운데 합격자 한두 명이 나오는 경쟁에 기성세대로서 미안해진다. 시험 방식과 내용을 보면 더욱 미안해진다. 사지선다, 오지선다로 직장을 가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객관식이라는 방식(단어가 주는 선입견도 크다)은 정말 공정한가. 시험을 관리하는 측에서 오지선다는 더없이 편한 방식이다. 점수대로 자르면 되니까. 소수점 이하 둘째, 셋째 자리에서 당락이 갈려도 우리는 그것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객관식으로 뽑았으니.

시험문제를 보면 화가 난다. 팔만대장경의 경판 수는? 1번 81351권, 2번 81352권, 3번 81353…, 다음 보기의 삼일운동 지도자 중 전라도 출신은? 실제 공무원시험에 나왔던 문제라고 한다. 공시생 25만명 시대, 소수만 공정하게(?) 뽑아야 하니 무리하게 떨어뜨리려는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시험문제 대부분은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게 하는 데 익숙하다. 군데군데 함정의 기술도 배어 있다. 수험생들이 함정을 시간 내에 파악하고 출제자 갑질에 적응해야 합격에 가까워진다. 정해진 답에 자신을 맞추는, 인내와 복종을 배우는 과정이 수험 준비인 것 같다. 그런 시험을 통과한 그들에게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라고 하는 게 현실이다.

중학교 때 배웠던 기술이라는 과목이 있다. 교과서에 실린 자동차 분해도를 보고 통째로 외우고 시험을 봤다. 그 시절 실습용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있을 수 없었다.


보닛도 못 열어본 아이들이 천자문 외우듯 도면을 외웠으니 자동차라는 기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기술 입국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술 과목 교육이 그랬다. 40년이 지난 지금과 차이는 뭘까.

작년에 시험 방식을 개선했다. 불공정하다(?)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면접 비중을 대폭 늘렸다. 간부들이 수험생들과 많은 시간 토론하면서 회사에 맞는 이들을 뽑았다. 이번 신입 사원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래도 매년 묻는 질문을 하면서 태그를 걸어줄 것이다. 10년 후에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세용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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