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기고] 원전 규제기관의 핵심가치

입력 2021/04/19 00:04
수정 2021/04/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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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핵연료 폭발 사고라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수소가 폭발한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의 원전에서는 수소가 발생하지 않지만 사고가 발생해 원자로 내부 온도가 섭씨 1000도를 넘어서면 핵연료봉 물질과 물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소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폭발한 것이다. 이에 국내 원전에서는 중대사고에 대비해 수소농도를 줄이기 위한 PAR(피동형 촉매 재결합기)를 설치했다. 백금촉매를 통해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물이 되도록 유도해 수소 농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PAR 성능에 결함이 있다는 일각의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의뢰해 독일에서 실험한 PAR 성능검사 결과 일정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은 "극한 조건의 실험 결과였을 뿐"이라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규제기준을 통과한 설비에 대한 부당한 의혹"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원안위가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우선, 원안위는 독립성이 생명이다. 원자력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과연 원안위가 독립적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이행 부처로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안위를 명시했는데 독립성이 생명인 원안위를 탈원전 이행 부처로 삼은 것부터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원안위원들의 속기록에서도 나타난다. PAR에 대한 사업자의 입장을 듣겠다고 담당자를 불러 놓고 "빨리 인정해야 개전(改悛)의 정(情)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말 바꾸기와 거짓말로 가득 차" 등의 발언이 기록됐다. 규제자는 해당 목적을 제외하고는 사업자에게 최소한의 부담만을 주어야 하는데 속기록에 기록된 위원들의 발언은 이를 넘어서는 면이 있다.




원안위로부터 업무 위탁을 받은 다양한 분야의 석·박사 인력 중심으로 구성된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재검증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다. KINS는 PAR 관련 성능시험 및 기기 검증 등 자료를 재검토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이를 원안위에 보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안전규제 행정도 50년의 역사를 가진다. 지난 50년의 역사, 그리고 안전하게 운영돼온 실적을 앞에 두고, 일부 원안위원의 비전문적 소견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은 고집으로만 비칠 수 있다.

원안위 홈페이지에는 운영방향과 관련해 공유해야 할 핵심가치를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으로 놓고 있다. 원안위원들이 보여준 최근의 모습은 이 다섯 가지 가치의 어디에 해당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이번 PAR와 관련한 논란을 신한울1·2호기의 운영허가와 연계한다는 점도 이해가 어렵다. 심지어 이번에 논란이 된 PAR와 신한울1·2호기에 설치된 PAR는 다른 제품이다. 신한울1·2호기 운영허가와 PAR는 별개의 사안인데 이를 싸잡아서 처리하겠다는 것은 국가의 전력수급계획을 지연시키는 직무유기 아닌가.

원안위는 이제라도 원전 규제기관으로서 '국가와 국민만을 고려하는 흔들림 없는 업무 추진'이라는 스스로 정한 핵심가치를 되새기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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