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노령담론의 시작

입력 2021/05/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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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 담론(narrative of aging)이라는 말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노인을 하나의 동질 인구 집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바로 노령 담론이다. 노령 담론은 노인은 일도 못하고 몸도 아픈 가련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노령 담론의 출발은 노인이 원래부터 문제투성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65세 이후에는 은퇴를 하고 연금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즉 65세 이후의 삶은 전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다는 것도 노령 담론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노령 담론은 만들어진 말이다. 1800년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 서구 의학계는 생명력을 다 소진한 사람이 늙는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관련 의학계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노인에게는 안식을 누리고 싶은 생물학적 갈망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말들로 인해 노령 담론은 싹트기 시작했다.

곧이어 1909년에는 이른바 '노인의학(geriatrics)'이 처음 등장했고 1914년에는 노인의학 교재가 출간되기도 했다. 결국 이와 같은 담론 형성은 1930년 즈음 완성되기에 이른다.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는 노인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내려지게 된 것이다. 이른바 늙는다는 것은 자신이든 가족이든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현상이며 대규모로 다뤄야 하는 골칫거리가 됐다. 노인은 나약하고 힘이 없으며 경제적 능력도 없고 컴퓨터를 활용하는 기술도 낮기 때문에 이들을 보는 시각이 관대하지 않은 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령 담론은 적어도 두 개의 용어와 함께 그 담론의 세력을 더 굳혀 나가게 된다. 바로 실업과 능률주의다. '실업'이라는 단어는 1887년 처음 등장했다. 이 단어는 빈민 구호소와 같이 성장하게 되는데, 비로소 유능한 일꾼도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부터 직업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바뀌게 됐고, 여기에 노인은 일도 못하며 몸도 아픈 가련한 존재라는 인식이 더해지자 비로소 지금과 같은 고령 개념이 만들어지고 '은퇴' 개념이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서 노인들을 비즈니스에서 몰아내게 한 논리가 추가적으로 만들어진다. 바로 능률주의(the gospel of efficiency)다. 비즈니스계에서는 이른바 능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노인이 결코 능률적이지 않다는 뿌리 깊은 관념과 같이한다.

노인은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이며 나약하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곡됐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령 담론은 노인을 인간이 아니라 고장 나서 고쳐야 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인식의 출발점이 잘못됐기 때문에 상품을 디자인하고 설계할 때도 그 문제가 드러난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 중 60세 이상은 35억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제라도 노령 담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해하고 모두를 위한 비즈니스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동우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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