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기고] 우물 안 개구리, 한국 보험회사

입력 2021/05/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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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년 전 유럽의 선박들이 전 세계 대양을 누비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유럽이 우수한 기술로 거대한 선박을 만들어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세계 정복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당시 유럽은 여러 면에서 아시아에 뒤처져 있었다. 유럽이 한강 유람선만 한 배를 만들 때 중국은 100m가 넘는 대형 선박을 만들어 아프리카까지 항해했다. 그렇지만 유럽은 정치·경제적인 절실함 때문에 바다로 나갔고 그 이후 모두가 아는 것처럼 세계를 지배하면서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보험회사들도 2000년대 초부터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인도에 현지 사무소와 법인 등을 설립하면서 보험시장 진출을 추진했지만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2000년대 초반에 해외 진출을 시작해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도쿄해상보험은 세계 곳곳에 자회사를 두는 글로벌 회사가 되었고 지난해 이익의 46%를 해외에서 거둬들였다. 우리나라 보험사는 지난해 기준으로 0.8%다. 무엇이 이토록 큰 차이를 만든 것일까?

물론 한국의 보험사가 해외 진출을 못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부족한 자본력이다. 보험은 돈을 버는 산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없었다. 보험사들도 보험은 내수산업이라는 전제하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에 만족했다. 규제만 충족하면 일정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여서 시장 경쟁을 통한 역량과 기술력을 쌓는 데 소홀했다.

자본력과 규제, 해외 경험 부재 등을 이유로 해외 진출을 꿈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동안 일본은 과거 유럽처럼 절실함을 가지고 해외로 나간 것이 아닐까. 일본 보험시장은 1997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다. 일본 보험업계는 저성장, 고령화, 저금리 상황에서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판단한 듯하다.


도쿄해상이 2000년 인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브라질, 영국, 미국에서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이나 자본이 충분했다기보다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 보험산업이 직면한 현실은 20년 전 일본 보험사가 직면한 상황보다도 더 나쁜 것 같다.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의 어려움에 테크기업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다 보면 가장 분명한 답은 해외시장 진출이다.

1990년 초 한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P생보사는 264억원으로 영업을 시작해 그동안 배당금과 매각 대금으로 약 2조6000억원을 본국으로 가져갔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한 결과 30년 만에 투자 금액의 약 100배 수익을 거둔 셈이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뛰어난 인재들의 집합소다. K팝, K방역, K컬처 그리고 한국의 기업들이 이룩한 세계인의 신뢰가 있다. 여기에 첨단 디지털 기술과 인슈어테크로 무장한 K보험으로 해외시장에 뛰어든다면 분명 가능성 있는 도전이 될 수 있다. 우리 보험산업도 이제 사회안전망의 역할뿐 아니라 외화를 획득하는 제2의 종합상사가 되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더 큰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보험산업은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을 위한 절실함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제는 꿈만 꿀 때가 아니라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간 유럽의 탐험가처럼 신시장에 도전해 세계 보험산업의 지형을 바꿀 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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