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거안사위(居安思危)

입력 2021/06/11 00:04
수정 2021/06/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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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런던 히스로공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항 중 하나다. 그런데 이 히스로공항에서 불과 10㎞ 떨어진 런던 서북부 지역에 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공항이 하나 있다. 바로 RAF 노솔트공항이다. 노솔트공항은 설립된 지 100년이 넘은 군 공항으로, 세계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런던에서 한 번의 이전 없이 꿋꿋이 수도를 수호하고 있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많은 선진국에는 수도를 지키는 군 공항들이 있다. 파리에는 르 부르제공항과 빌라쿠블레 공군기지가 있고, 미국 워싱턴DC에도 덜레스공항보다 더 가까운 곳에 앤드루스 공군기지가 있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도 도쿄 인근 이루마기지를, 중국도 베이징 근처 난위안 공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어도, 심지어 외국 군대의 침략을 당한 적이 없는 나라도 수도 방어를 위해 군 공항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의 모습은 이런 선진국들과 궤를 달리하는 듯하다. 불과 60년 전 수도가 함락된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안보에 무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성남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한 여당의 발언부터 그러하다. 서울공항은 국빈들이 방문하는 관문이자 한미 공군이 함께 사용하며 군사 안보적으로 중요성 큰 곳인데도 개발 논의가 활발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군사공항은 여의도공항이었다. 그런데 여의도는 모래섬인 데다 매년 홍수로 활주로가 물에 잠기는 등 지형적인 문제가 많아 1968년 공군에서 서울시에 기지를 팔고 새롭게 이동한 곳이 서울공항이다. 다른 군사공항이었던 김포공항이 민간공항으로 바뀌면서 이제 수도권에서 군사공항은 성남 서울공항 하나뿐이다. 사실상 수도 방어를 위한 유일한 공군기지인 셈이다.


여전히 휴전 중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군 공항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지금도 핵을 보유한 데다 상비 병력이 국군보다 2.3배 많고 재래식 무기도 우세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육지전 중심이던 6·25 때와는 달리 속도가 알파이자 오메가인 현대전에서 군수물자를 더 빠르게 보급할 수 있는 군 공항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수도권 군 공항을 아파트로 개발한다는 정책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생각인 이유다.

안보는 건물의 비상계단과 같다. 평소에는 별 필요 없어 보일지 몰라도 정말 큰 재앙이 닥쳤을 때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생명줄이다. 재앙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건 코로나19 사태에서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옛 선인의 말씀을 새겨야 할 때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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