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김재홍 칼럼] 한국외교, 열강만 말고 강소국도 보라

입력 2021/06/11 00:05
수정 2021/06/11 09:06
한국 '5030그룹' 7국 중 하나
첨단 과학기술력도 선두권
국가위상 선진국 근접한 만큼
열강뿐 아니라 강소국 외교 등
국제관계 다변화 적극 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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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공동성명 외에 합의된 '한미 파트너십 자료'가 여러 의미를 말해준다. 공동성명이 오랜 한미동맹의 근간인 군사안보 사항을 담은 데 비해 한미 파트너십 자료는 경제와 과학기술이 주요 내용이다. 오늘날 한미 관계를 계속 군사동맹의 틀로만 가두어둘 수 없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국가 위상과 미국의 현실적 필요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우선 인구 5000만명 이상에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되는 세계 7개국 중 하나다. 5030그룹에서 G7 서방 선진국 중 캐나다가 인구 부족으로 빠지고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간다. 더욱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정보기술(IT) 등의 첨단 과학기술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선두에 위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임을 공인받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위상이야말로 한국 국민이 일제 식민지에서 광복과 6·25전쟁의 역경을 겪으면서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서방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광복 후 초등학교에 들어가 서구식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서구 선진국들처럼 잘살아보자는 소망을 품게 된다. 그 광복 후 교육 세대가 20대 후반에 이르러 중요한 산업 노동과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성장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5·16 후 개발독재가 경제성장의 견인차라는 가설은 이 같은 교육의 효과와 사회과학적 근거를 도외시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 최저임금, 최고 산업재해율, 고인플레이션과 물가, 고실업률 등 악조건 속에서도 피땀 흘리며 일한 국민의 분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갖은 고생 끝에 이제 막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그러나 또다시 세계 열강정치의 소용돌이를 만난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대립이 그것이다. 한국 외교는 미·중·일·러 4대 열강을 대상으로 한 '기축외교'가 핵심이었으나 전략적 균형외교 또한 놓쳐서는 안되는 상시 과제였다.


균형 있는 외교 다변화는 한국의 국익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과두 지배를 개혁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 내가 만난 다미르 쿠센 주한 크로아티아대사는 한국의 지나친 열강 중심 외교에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노련한 직업외교관인 그는 나의 강소국(强小國) 예찬론에 적극 동조했다. 그는 작년 12월 크로아티아 대지진 때 코로나19 신속진단키트를 보내준 한국의 중견기업에 감사를 표하며 한국이 크로아티아를 아는 체해준 드문 사례로 꼽았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총리도 기자들 앞에서 "한국으로부터의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언급했다. 그런 인연으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고 지난주 귀국한 김정률 제니스그룹 대표는 "크로아티아가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서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와 비슷한 인구 500만명 안팎의 잠재적 강소국"이라면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각각 수상한 기초과학 강국이고 세계 최고 속도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국민이 한국에 대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있는 반도체 대국, 세계적인 휴대폰 생산국, 현대자동차의 나라, 방탄소년단의 모국, 태권도 종주국,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은 과학기술 투자가 세계 4위인 나라임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내년에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국과 크로아티아 관계당국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휴양관광지인 이스트리아반도와 제주도 간 관광 및 수소에너지 개발 협력 등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이제 국가 위상으로 보아도 열강뿐 아니라 강소국 외교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신남방정책 등 국제 관계 다변화를 적극 펼쳐야 한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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