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디지털 기업 선언

입력 2021/09/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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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명 남짓 모이던 임원회의를 올해 전국 영업 현장의 리더들로까지 확대했다. 200명 넘게 모일 만큼 소통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영상회의 애플리케이션(앱) 덕분이다. 시공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의견이 공유되니 소위 '카더라 통신'이 사라지고 이슈에 대한 공감이 잘된다는 평이다. 디지털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하루를 거뜬히 보낼 수 있다. 은행 업무도 예외는 아니다. 간단한 상담에도 수십 분을 기다리기 일쑤였던 것은 옛말. 고작 몇 분이면 은행 앱으로 웬만한 상품 가입이 가능하다. 팬데믹 속에 디지털의 진가는 더욱 빛난다. 백신 접종 예약은 물론 소상공인 긴급 자금 신청까지 사람을 위해 '열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이 사태가 10년쯤 전에 발생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디지털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합니다!" 올해를 시작하며 직원들 앞에서 다짐한 말이다. 여길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는 '거울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의 말이 가슴 한편을 쿡쿡 찌른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손보는 것을 시작으로 직원들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헛헛한 느낌이 든다. 디지털을 단지 미래 수익 증대를 위한 기회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조직의 지향점으로 디지털화를 삼는 것이 맞을까.

코로나19 시대 기업들은 과감한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불안한 현실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경쟁하듯 기술 발전에 치중하다 보면 디지털 격차로 인해 소외된 고객들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소통 부족과 관계 결핍에 따른 갈등은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데이터 알고리즘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의 해답은 무엇일까.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비즈니스의 성패가 기술이 아닌 인간관계, 의사소통, 감정 이입과 같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결정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기업은 디지털이 아닌 고객의 편에서 답을 찾으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 창립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선포한 신한금융그룹 비전이다. 고객이 금융에 바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담고자 했다. 금융 앱 사용이 불편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은행에 방문하는 고객들을 위해 보다 편리한 화면을 만들어주는 것. 소득 증빙이 어려워 대출을 받기 힘든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기준의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한 뒤 금융 혜택을 제공하는 것. 이와 같이 고객을 행복한 미래로 인도하는 것으로 디지털은 그 임무가 완성될 것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변곡점에서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해줄 나침반은 다름 아닌 고객이다. 이것이 기업이 디지털이 아닌 고객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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