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기후변화 대응, 결국 돈이 문제다

입력 2021/09/28 00:04
기후 대응 민간투자론 한계
정부의 적극적 지원 있어야
이 과정서 통화정책 협조 필요
韓銀은 중앙은 독립성 지키며
녹색금융 아이디어 실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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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일 전화를 걸어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협의했다. 그 전날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중국, 미국, 독일의 공통점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주도하는 환경 분야의 악동이라는 사실이다.

그 점에서는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플라스틱 폐기 면에서 세계 3위이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5위 수준이다. 한국이 환경을 더럽히며 만든 물건들은 한국인만 소비하지 않는다. 대부분 수출된다. 그렇다면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만든 물건의 소비국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음란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처벌받는 것과 같다. 결국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조업 국가의 탐욕으로만 몰고 가서는 안된다. 중국이 그런 주장을 설파하고 있으며, 우리도 그런 논리를 차근차근 펼쳐나가야 한다.


조만간 영국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의 주역은 민간이다. 지금 각국 기업들이 생산 방식 전환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금융기관들도 투자와 대출을 통해 친환경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투자은행(EIB)은 2030년까지 총 1조유로를 친환경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그리고 한국투자공사 등도 해외 투자 결정 시 ESG(환경·책임·투명경영) 차원에서 기후와 환경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우리나라 연기금들의 그런 투자 행태를 '인류애가 넘치는 이타주의'라고 꼬집는다('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한국 돈으로 선진국 산업구조는 개선시키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나쁜 환경 속에서 뒹굴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기관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말할 필요도 없이 친환경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기업들의 국내 설비 투자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장차 한국 경제의 사활을 쥐고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다만 사이비 녹색금융(Greenwashing)에 빠져들거나 경쟁적 쏠림은 피해야 한다. 정부가 국내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이 또 있다. 환경은 공공재이며, 공공재의 가치에 대한 금융시장 평가는 언제나 인색하다. 환경 개선을 위한 민간 투자는 수지맞기가 어렵다. 결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이는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진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참전국들의 국가부채가 동시에 늘어난 것과 같다. 그래서 전 세계가 고민하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정부의 부담을 덜려면 통화정책의 협조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엄격한 구분이 미덕이라고 간주됐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깨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과 일본에서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올여름 유럽중앙은행(ECB)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이탈리아), 범람(독일), 산불(스웨덴) 등 기후 재앙의 양상과 피해액이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 대응 앞에서 자본금에 비례한 전통적 자금공급원칙(Capital Key)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숨은 뜻이다. 결국 기후변화를 이유로 재량적 자금 공급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훨씬 과감하다. 지난 7월 기업들의 친환경 설비 투자 자금을 금리 0%로 무제한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변화를 앞세운 무제한 양적완화다. 중앙은행이 재정정책을 수행한다는 비판과 함께 수출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불공정무역의 시비를 부를 수 있는 모험이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돈으로 해결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를 뽑을 때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녹색금융의 아이디어를 슬기롭게 실천하는 균형감이 관건이 될 수 있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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