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발상의 전환

입력 2021/10/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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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회원 가입을 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I'm not a robot)"를 체크하고 사진 속 왜곡된 문자를 입력해서 정답을 맞히는 '작은 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매번 10~20초 시간을 들이는 이 작업을 귀찮게 느꼈을 수도 있는데, 그 배경과 의미를 알면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과제는 '캡차(CAPTCHA)'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발되었으며 '사람과 컴퓨터를 구분하기 위한 자동화된 공개 테스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술은 해킹이나 스팸 발송 등 악의적으로 운영되는 온라인상의 '봇'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2000년 카네기멜런대학의 한 박사과정 학생과 동료들이 처음 만들어냈고 2009년 구글이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인지와 추론이 약한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를 역이용하자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했고, 캡차 기술을 뚫으려는 세력에 맞서 캡차 역시도 기술 발전을 지속해오면서 연구원들은 스스로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캡차 문제를 풀기 위해 매일 수억 개의 문자를 입력하고 수십만 시간을 소비하는데, 이를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없을까."

이 결과로 보완 출시된 '리캡차(reCAPTCHA)'는 이전과 달리 하나의 단어가 아닌 두 단어를 입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리캡차의 첫 번째 단어는 기존 방식대로 이미 만들어진 정답지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실제 사람인지 판정하는 한편, 두 번째는 고문서에서 훼손되거나 얼룩 등이 묻어 현존 기술로 판독이 어려운 단어인데 첫 단어를 맞힌 사람들이 직접 정답을 채워넣는 방식을 따른다. 실제 이 과정을 통해 구글은 수백만 권의 고문서를 완결성 있게 디지털로 복원시켰다고 한다.


일종의 '대규모 온라인 협업'을 통해 인류의 디지털화에 기여하자는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더 나아가서 2014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노캡차 리캡차(noCAPTCHA reCAPTCHA)' 기술은 사람의 마우스 움직임, 문제 반응 속도 등의 행동 메커니즘을 파악하기도 하고 지도에서 표지판이나 신호등과 같은 사물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는 자율주행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로상의 물체 인식률을 높이고자 보다 정교하고 정확한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캡차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캡차를 만든 과테말라 출신의 루이스 폰 안은 누구나 공평한 시스템에서 무료로 언어 교육을 받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듀오링고'라는 서비스를 2012년 론칭해 지난 7월 이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며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나는 데이터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데 있어 발상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며 캡차의 사례를 종종 소개한다. 주어진 문제에 국한해 단순히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야 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기업들과 협업 연구하며 늘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대곤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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