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디지털세보다 더 큰 그림을 보아야

입력 2021/10/14 00:05
디지털세는 GATT의 종언
제조업·유형자산 시대에서
플랫폼·무형자산 이동 의미
이번 합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으로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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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136개국은 2023년부터 디지털세 도입에 합의했고, 이달 말 G20 정상회의에서 이를 추인한다. 2018년부터 시작된 디지털세 논의는 초기의 회의적인 전망을 극복하고, 1947년 GATT 이후 역사적인 글로벌 조세 개혁을 이루어냈다.

4년 전부터 EU는 디지털세 전 단계인 디지털서비스세(DST)를 도입하려 했으나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은 통상법 301조(무역 보복)를 꺼내 들며 반발했다. 올해 초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G20 IF(포괄적 이행체계) 총회는 디지털세 합의가 어렵다고 보고 대신 국가별 DST 허용 여부를 고민했다. 그런데 6월 G7 재무장관회의와 정상회담이 글로벌 법인세 개혁에 합의하면서 디지털세도 급물살을 탔다.


이후 한 달도 채 안 되어 합의안 초안이 나왔으니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시각이 냉랭하게 바뀐 것과 더불어 팬데믹으로 인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재정 고갈에 따라 세원에 대한 갈증이 존재한다. 조 바이든 정부가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을 제안하면서 디지털세 논의도 맞물려 진행됐다. OECD도 다국적기업에 대한 디지털세와 탄소국경세 같은 국제조세의 틀을 설계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실제로 디지털세 도입으로 전 세계적으로 매년 2500억달러 이상의 세수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합의안은 과세권배분기준(필라 1(Pillar 1))과 세원잠식방지규정(필라 2)을 모두 포함한다. 이는 OECD 국제조세모델을 온라인 서비스에 확대·적용하는 것으로, 그간 논쟁의 중심에 있던 서버의 물리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매출이 발생한 지역에서 과세가 가능하게 됐다(필라 1). 필라 2는 15%의 최저 법인세율을 규정함으로써 세율이 낮은 곳으로 조세 회피가 가능했던 허점을 국제 공조를 통해 보완했다.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별도의 조정절차도 두어서 기업의 우려를 불식하고자 노력했다.


우리 정부도 영업이익률이 3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지적되던 국내 빅테크의 역차별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세 도입만으로 안도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먼저, 디지털세가 빅테크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합의안에 온라인 판매가 포함되므로 거의 모든 업종이 영향을 받게 된다. 당장 제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비슷한 선상에서 거론된다. 또한 향후 적용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므로 조세 회피와 무관한 정상적인 기업활동도 위축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금이 가지는 한계에 있다. 조세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정경쟁을 유도할 수 있지만, 자원 배분의 효율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빅테크는 소비자에게 세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가지는데, 이는 국제 공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애플은 작년에 특정 지역의 세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칠레 등에서 유통되는 앱 가격을 올렸다. '초과이익환수'라는 미명으로 조세의 기본 속성을 도외시하면,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온라인에서도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GATT에서 디지털세로의 변화가 암시하는 더 큰 그림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제조업과 유형자산의 시대가 저물었고 플랫폼과 무형자산으로 경제의 축이 전환됐음을 선포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연매출 10억달러 이상의 OECD 소재 5000여 대기업에서 무형자산의 비율은 최근 2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S&P500 기업의 1975년과 2020년의 유형자산 대 무형자산의 비율은 8대2에서 2대8로 역전됐다. 유례없이 신속하게 달성된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 합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과 혁신 게임으로의 초대장이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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