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가을 낙엽과 부동산

입력 2021/10/21 00:05
도박판 전락한 주택 시장
정책실패·집단불안에 과열
국민총행복엔 부정적 충격

인구구조 변화, 집값에도 영향
시세 믿지 말고 노후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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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골방에 박혀 공부하던 사법시험 준비생이 바람 쐬러 나왔다가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계절 변화에서 인생무상을 떠올리는 대신, 그는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아, 부동산이 동산으로 전환되고 있구나!

민법에서 부동산은 토지 및 그 정착물을 뜻한다. 정착물은 토지 위에 지어진 건물, 수목의 집단, 농작물 등을 말하므로 땅에 뿌리내린 나무도 부동산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부동산에서 동산으로 속성이 바뀐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어떤 의미일까? 대다수 국민에게 유일한 부동산은 주택인데, 대부분 아파트를 선호함에 따라 아파트는 부동산의 대명사가 됐다. 아파트는 주거공간의 의미를 넘어 환금성이 높은 고수익 유가증권과 같은 투자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근간의 집값 폭등 사태로 이번 생의 승자는 서울에 아파트를 사둔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데, 국민총행복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행동경제학 연구에 의하면, 이득에서 얻는 행복감의 증가폭보다 같은 금액의 손실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감소폭이 훨씬 크다. 따라서 딴 돈과 잃은 돈을 합치면 영이 되는 제로섬게임 도박판에서 승자의 휘파람은 패자들의 곡소리를 절대 능가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중독과 파산 등 부작용을 차치하더라도 도박판은 없는 편이 국민총행복 관점에서는 낫다.

최근의 주택시장도 도박판이었다. 투기세력뿐 아니라 전세 공급 감소로 내 집 마련이 절박했던 실수요자들도 '영끌' 주택구매를 하며 뛰어들었다. 주택시장 도박판은 저금리 상황의 과잉 유동성이 땔감이 되고, 기존 세입자 보호정책의 부작용과 공급 잠김 및 집단적 불안감이 부채질해 불타올랐다. 다주택 소유의 수익은 기회비용을 능가했고, 인프라 집중 지역의 집값 폭등은 다른 지역까지 들썩이게 했다. 아파트 신고가 거래에 편승한 호가 상승이 이어지는 동안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근로 의욕이 꺾였다. 국민총행복 관점에서는 의심할 바 없는 부정적 충격이다.


그래도 집을 산 사람은 이번 생 내내 승자로 살게 될까? 금리, 대출규제, 부동산세제 변화와 신규 주택 공급도 시차를 두고 집값에 영향을 주겠지만, 이번 생을 따진다면 더 길게 봐야 한다. 지난 20년간의 초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급변은 향후 집값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구조적 요인이다.

당장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집을 줄이거나 처분하게 된다. 이를 받아줄 다음 세대는 구매력을 떠나서 인구 자체가 적다. 1인 가구 증가세가 주택수요를 늘려왔지만 물량 흡수가 역부족인 시점이 올 수 있다. 지금 집값이 아무리 올랐어도 팔아서 수익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한때 스쳐가는 숫자일 뿐, 더 길어질 노후에 충분한 소득원이 되지 못한다.

1990년대 초 최고조에 달했던 일본의 부동산시장 버블은 경쟁력과 수익성 저하로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현금 확보를 위해 매물로 쏟아내면서 붕괴됐다. 우리는 부동산시장 버블이 터지면 가계가 광범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보다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과 함께 가계부채 관리와 금융 불안 해소라는 난제에 직면했다. 가계는 지금 집값 그대로 내 노후자산이라고 믿지 말고, 저축과 건강 및 근로능력을 관리하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한꺼번에 집을 내놓지 않고 살던 집을 이용해 노후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는 주택연금 등도 확대돼야 한다.

변화가 심해 아무 보장이 없는 생을 두고 인생무상이라 하지만, 집값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보장 없는 자산가격도 언젠가 때가 되면 지는 잎과 같을 수 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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