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스펙, 경력, 경험

입력 2021/11/27 00:04
109978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요즘 오십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습니다."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지인이 자신도 3년을 고생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답례의 말을 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오십견의 아픔을 알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십견을 앓지 않았으면, 그 아픔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경험만큼 중요한 능력은 없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은사 스님과 함께 나뭇가지를 자르다가 은사 스님께서 크게 다치신 적이 있다. 원인은 경험 부족이었다. 톱으로 그렇게 큰 나무를 잘라본 경험이 없는 나는 나뭇가지가 알아서 밑으로 떨어져줄 줄 알았다. 그러나 꼭 잡고 있던 어린아이의 손을 갑자기 놓으면 어떻게 넘어질지 알 수 없듯이, 톱질로 잘리는 나뭇가지는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다.


경험 부족으로 나는 은사 스님을 크게 다치게 하고 말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학생들이 자주 학교에 가지 않고 비대면으로 수업하다 보니 학연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코로나19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유튜버 김미경 씨는 자신의 책 '김미경의 리부트'에서 코로나19 이후 사회에서는 학력보다 경력이 중시될 것이고, 경력보다는 경험이 중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럴 수 있다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이바지한 바가 제법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출가 후 나는 이제 스펙(Specification)과는 결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승가도 사회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어서인지, 스펙이 좋으면 대단히 유리하다. 혜민 스님이 스타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서울대나 KAIST 출신은 승가에서도 주목받고, 그들은 손쉽게 원하는 위치를 확보하기도 한다.


나도 유명 문인 출신이라는 스펙이 따라다닌다(유명 문인도 아니지만). 출가자에게 진정한 실력은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모든 것은 실체가 없음을 알아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욕심 내지 않는 것이며, 모욕을 당해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류대 출신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은 승가에도 뿌리가 깊다.

글을 많이 써본 경험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출가해서도 글을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어렵게 살아본 경험도 도움이 된다. 출가는 자발적 가난에 익숙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템플스테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면, 내가 대학에서 강의했던 경험, 지방대학을 다녔던 경험, 진로를 바꾸었던 경험이 모두 크게 도움이 된다.

부디 우리 사회가 경험의 가치를 더 소중히 하게 되기를 바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자를 뽑을 때도 어느 지역 출신이냐,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그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느냐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

[동명 스님 시인·중앙승가대학교 비구수행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