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책과 미래] 수능 유감

입력 2021/11/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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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입시에서도 국어 독서영역이 '불수능'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헤겔의 변증법, 기축통화와 환율 변동 등의 지문이 학생들을 힘들게 한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학교 수업이 정상으로 진행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더 커진 것 같다.

사회 변화와 지식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는 동시에, 낡거나 잘못된 정보가 지뢰처럼 널린 시대다. 이런 사회에서는 많이 아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정보를 읽어서 정확히 이해하며 비판적으로 평가해 습득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에 호응해 수능 국어에서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을 평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조병영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쌤앤파커스 펴냄)에 따르면, 현대의 문맹은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지식 정보기술 사회를 살아가지만, 눈앞에 펼쳐진 정보와 텍스트와 미디어를 맥락화하여 정확하게 분석적으로 읽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문명적 삶의 8할을 읽고 쓰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판단하는 방식이 결정하는 세상에서 실질적 문맹 상태나 낮은 문해력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잘 읽는 인간'을 길러내고 이를 장려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사교육의 힘이 많이 작용하는 영어보다 독서를 통해 학생 스스로 역량을 늘려갈 수 있는 국어가 역할을 하는 게 가장 좋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학교에서 독서 연계 수업을 더 늘리고, 학생들도 꾸준한 독서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입시를 대비해서도, 미래를 위해서도 더 유리하다.

수능 국어의 진짜 문제는 필요한 문해력과 상관성이 약한 지문이 나왔다는 점에 있다. 헤겔 철학은 물론 죄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헤겔은 학자들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에 '헤겔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성과가 쏟아졌다. 라캉, 지제크 등 현대 철학의 스타들이 모두 헤겔의 후계를 자임하는 데 따른 영향도 크다. 그러나 지문엔 인륜성과 자유의 철학자로 헤겔을 다시 읽는 현재 성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1980년대 낡은 문장을 읽는 듯했다. '이걸 왜…'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조병영은 "공동체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호를 다루고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을 "실질적 문맹"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현재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낡은 지식을 늘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문맹의 증거일 수 있다. 문제 풀이를 위해 일부러 배배 꼬아 놓은 기괴한 문장들로는 학생들을 괴롭힐 순 있겠으나,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문해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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