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궁중문학의 진수, 혜경궁의 한중록

입력 2021/11/27 00:04
9살때 세자빈 간택돼
70년을 궁궐서 보낸 혜경궁
파란만장, 우여곡절의 삶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복원

영조의 분노 진정시켜
아들 정조를 지켜낸
혜경궁의 지혜가 빛나는
치밀한 기록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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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사건은 무엇일까? 세조가 조카 단종을 유배지에서 처형시킨 사건, 광해군 동생 영창대군이 강화도에서 증살(蒸殺)된 사건도 꼽을 수 있지만, 필자는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을 거론하고 싶다. 임오화변은 현장을 직접 기록한 혜경궁 홍씨(1735~1815)의 '한중록'으로 인해 그날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시켜 주고 있다.

1744년 10세에 사도세자와 혼인한 혜경궁은 1752년 정조를 낳는 기쁨도 있었지만,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1749년 15세의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면서 부자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영조는 세자의 문안조차 받지 않았고, 세자는 홍역에 걸린 몸으로 눈발이 쌓인 궁궐 마당에 머리를 조아려 부친의 노여움을 풀어야 하기도 했다. 영조에 대한 트라우마로 세자는 의대(왕실의 옷)를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의대병'이 심해졌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사람들까지 죽였다. '한중록'에는 "이때 소조(小朝·사도세자)의 의대 병환이 극하시니, 그 어인 일인고. 의대 병환이야말로 더욱 형용할 수 없는 괴질이니, 대저 옷을 한 가지나 입으시려면 열 벌 혹은 이삼십 벌이나 지어 놓아도 귀신인지 무엇인지를 위하여 불태우시기도 하니라. …이때 시중드는 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사람이 다치니, 이 아니 망극한 병환이 아니냐"면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1762년 윤5월 영조는 세자를 창경궁 문정전 앞으로 불렀다. 자결을 명하였다가 신하들이 만류하자 뒤주에 들어가도록 했고, 사도세자는 8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혜경궁은 정조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한중록'에는 "오빠가 들어오셔서 '세자를 폐위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드셨다 하니, 빈궁도 더 대궐에 못 있을 것이라. 위에서 본집으로 나가라 하신다. …서로 붙들고 통곡하노라"라고 하여 참담했던 그날을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 영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다음 날인 21일 30년에 가까운 부자간의 은의(恩義)를 생각한다면서, 세자의 호를 회복시켜 주었다. 사도세자가 복권되자 혜경궁은 9일 만에 궁궐로 들어왔다. 궁궐로 온 그녀는 영조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세손을 보호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혜경궁은 영조의 처분이 정당했음을 인정하고 "세손을 경희궁으로 데려가서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영조의 거처인 경희궁에 세손을 보낸 것이다. 영조는 가효당(嘉孝堂)이라는 당호를 내리면서, 그녀의 진심에 감격했다. 혜경궁의 지혜로운 처신은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정조는 1795년 화성에서 아버지 무덤을 참배하고, 어머니의 회갑연을 성대히 베풀어 주는 의도에서 화성 행차를 단행했다. 이때 혜경궁은 처음 남편 무덤을 방문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불안함이 지극하되 할 수 없어 내려가 산소에 참배하니, 내 무슨 지식이 있어 새 산소가 좋은지 알리마는 기이한 줄은 알겠더라. 임금이 하늘을 찌를 아픔을 겪으시면서도 산소 옮기기를 십수 년을 추진하시어 대사를 이루셨다. …실제 산소를 보니 너무도 거룩하여 그 극진한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는지라, 망극한 가운데 또 감탄하니라"라고 하여,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찾은 감격을 기록하고 있다.

혜경궁이 '한중록'을 처음 집필한 동기는 회갑을 맞이해, 일생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내 나이 회갑을 당하니 남은 날이 적고, 또 올해는 살아 계시면 경모궁 또한 환갑이라. 추모가 더욱 심하니라. 세월이 더 가면 내 정신과 근력이 지금만도 못할 듯하여, 조카의 청을 따라 내 겪은 것을 알게 하니, 감격하여 쓰긴 하지만, 내 쇠약한 정신이 지난 일을 다 기록하지 못하고, 그저 생각나는 대목만 쓰노라"라고 한 것이다. 제목도 이런 뜻을 담아 '궁중에서 한가하게 쓴 기록'이란 의미의 '한중록(閑中錄)'이라고 하였다. '한중록'은 아홉 살 때의 간택부터 시작하여, 팔십 평생 궁중에서 겪은 일들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복원한 책이다. '한중록'의 치밀한 기록들은 왜 궁중문학의 진수라고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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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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