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독일에 켜진 '3색 신호등'

입력 2021/11/27 00:05
의외로 쉽게 합의 도출된
사민·녹색·자민 3당 연정
독일의 협업·토론문화 덕분
턱없는 공격, 숨겨진 저의…
한국 현실 떠올리면 마음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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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기욺이 확연한 데다, 선거를 앞둔 시절의 어수선함이 더해져, 열린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해가 가기 전에 갈무리할 것들 생각에 혼자서도 마음이 초조한데, 작은 나라 안에서 선거가 뭐라고, 극과 극으로 갈라져 한 가지 생각에 요지부동인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울화가 치밀어 그만 다 외면하고만 싶다. 그래서인지 먼 곳의 불빛 하나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독일에는 지난 24일 오후 세 시, 우리 시간으로 같은 날 밤 열한 시, 빨강·초록·노랑 3색의 '신호등'이 환하게 켜졌다. 선거가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정이 체결된 것. 독일은 선거에서 다수 득표를 한 당이 자동으로 집권하는 것이 아니고, 반수가 넘어야 집권을 할 수 있는데, 자고로 그 어느 정당도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 두 개의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이번에는 두 당으로도 과반이 안 되어 사민당, 녹색당 그리고 자민당, 세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3색 신호등이다.) 둘도 힘든데 세 당이 합의를 하자면 난항이 상당할 텐데 웬걸 연내에 되랴 했는데 뜻밖에도 합의가 빨리 이루어진 것이다. 12월 초 각 당의 전당대회에서 인준을 받고 12월 8일 총리가 선출되면 바로 새 정부가 가동된다.

협정은 그저 구두 합의가 아니다. 공개된 178쪽에 달하는 협정서에는, 집권하면 해나갈 국정 전반이 조목조목 적혀 있다. 혁신, 전진이라는 진보적 기조의 확인뿐만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인 코로나19 대책부터, 어린이와 노인 지원 확대, 최저 시급 12유로 책정, 주택 연간 40만채 공급, 2030년까지 화석연료 탈출, 디지털화의 구체적 내역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당의 특성과 득표율에 따라 실무가 배정되어 있다.


즉 최다 득표당인 사민당에는 수상직과 내무, 노동, 국방, 보건, 건축, 경협 등 7개 장관직이, 그다음 득표당인 녹색당에는 외무, 경제·기후, 가족, 환경, 농업 등 5개 부서 장관직이, 자민당에는 재무, 법무, 교통, 교육 4개 부서 장관직이 배정되어 있다. 누가 직을 맡을 것인지까지는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이 된다. 어느 당이든 집권 시 일할 사람들의 윤곽을 '섀도 캐비닛'으로 잡아놓고 준비하며, 선거 자체가 여러 정책의 점검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협정서는 두 달 전 선거 직후부터 머리를 맞대고 줄다리기를 한 결과다. 한 나라 살림을 색깔 다른 세 당이 꾸려 나간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 같은데, 협정 체결을 발표하는 당대표들은 다양성과 협업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한결같이 확고해 보인다. 경제단체연합 측은 사회복지가 좀 과하고 재정 확보가 조금 취약하다는 비판도 내지만, 국민은 대체로 환영하는 환한 얼굴이다. 제3자로서도 믿음이 가는 건, 그들에게 있어 온 오랜 협업의 전통, 무엇보다 독일인들의 몸에 밴 '토론 문화' 때문이다.

다들 이야기를 참 많이 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우선 잘 듣고,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으면 반드시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 그래서 맞으면 납득하고 승복하고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다시 개진한다. 조그만 아이들도 이야기하다가 흔히 하는 말이 "그건 논리적이 아니야"다. 말할 때 스스로 논리를 세우려 애쓰고, 말이 된다 싶으면 따른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시끄러울 만큼 토론이 많다. 텔레비전도 토론 프로가 너무 많아 도무지 재미가 없다. 어느 사회인들 문제가 없으랴마는, 어떤 사안이든 장점만 있으랴마는, 그렇게 사회적 합의가 결국은 도출되는 것이 보기 좋다. 비판이 있지만 승복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걸 오래 바라보는 나부터도 의견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턱없는 공격을 견뎌야 하거나, 말을 들리는 대로 듣지 못하고 저의를 짐작해 내느라 바쁘다. 어찌하면 평정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며 살까를 더 고심하게 되는 시절이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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