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찬바람이 불어오면

입력 2021/12/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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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귓전에 맴도는 노래가 하나 있다. "찬바람이 불면~".

1990년 1월, 전공의 수련 마지막 해를 이 곡과 함께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라는 가사를 곱씹으며, 길고 길었던 레지던트 생활을 끝마치는 내년을 기약했다. 이듬해 심장 질환 치료를 담당하는 순환기내과 전문의가 되고 보니 이 노래가 새삼 달리 들렸다.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심장, 뇌혈관 환자들이 병원을 가득 메워 식은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월별 사망자 수를 분석했더니 10월부터 급증해 1월에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외부 기온이 떨어지면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오르고, 혈액의 끈적거림, 즉 점도가 올라가므로 혈관이 터지거나 막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럴 경우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이어져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서도 이별에 대비할 시간이 없어 심리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황망하기 이를 데 없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같은 급사를 피해야 한다. 돌연사의 원인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심장 근육을 먹여 살리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증과 부정맥,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 그리고 대동맥 박리나 파열과 같이 대동맥이 찢어지는 질환이다. 모두 기온과 관계가 깊다. 돌연사를 일으키는 대표 질환인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인해 갑자기 막혀 심장 근육이 뛰지 못하고 멎는 현상을 의미한다. 급성 심근경색증은 운동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호흡 곤란 등과 같은 전조 증상이 오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런 증상 없이 혈관 속 동맥경화 덩어리가 혈관 벽에 붙어 있다가 갑자기 혈관 안쪽에서 터지면서 혈관이 막히는 경우도 흔하다.


쌀쌀한 날씨에 운동하거나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교감신경계가 더욱 자극받는데, 이럴 경우 심근경색 없이도 부정맥이 올 수 있다. 특히 심근경색의 초반에 자주 발생하는 부정맥을 즉시 치료하면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다. 오며 가며 한 번쯤 보았을 자동심장충격기, 정식 이름은 자동체외제세동기, 영어로는 AED라 쓰여 있는 기계가 심근경색 초기 환자를 살릴 수 있다. 뇌혈관 질환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 동맥경화의 위험 인자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대동맥 질환이다. 갑자기 기절할 정도의 극심한 흉통이 나타나면 대동맥 박리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대동맥이 파열돼 사망하게 되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한 시간에 1%씩 사망률이 올라가는 병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평소 혈압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찬바람이 불면서 겨울이 시작됐다. 올 한 해가 가기 전 그동안 미뤘던 건강검진을 통해 내 몸의 이상을 미리 챙겨 보시길 권해드린다.

[박승우 삼성서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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