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성찰 기회

입력 2021/12/0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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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와 관련된 일로 한동안 필리핀에 출장을 자주 다닌 시절이 있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른 기후 특징 때문에 도심의 번화가를 둘러볼 때나 관광 명소 등을 방문하게 되면 늘 어지럽게 느껴지곤 했다. 자전거 택시(?)인 트라이시클이나 지프니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그 어지럼증은 한층 더했다. 이 어지럼증은 더워서라기보다 습기 많은 기후에 길은 늘 질퍽했고, 그늘진 곳에 피는 여러 곰팡이나 습식 이끼 때문에 느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어지럽게 장식된 지프니 한쪽 면에 쓰인 여러 문구 중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Get High! Not with drugs, but with God!" 말하자면 대충 "마약 먹고 들뜨지 말고, 하느님 믿고 들뜨자!"는 뜻이다.


신앙을 갖자는 종교 홍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마약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 표현도 아닌 것이 느낌이 아주 이상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의 본드나 부탄가스 흡입 등으로 관련 기사가 일간신문에 자주 등장했던 시기였다.

나는 천주교 사제로서 신학을 전공해 대학에서 종교체험이라는 주제를 연구했기에 신비체험이라든가 초월체험 혹은 기이체험 등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체험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종종 해왔다. '들뜨다', 즉 내부의식이 고양되는 체험을 가장 기본적인 신비체험의 원형으로 설명하곤 하는데, 마약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조종되고 유도돼 고양되는 체험과 순수 종교적 영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양된 내부의식의 체험은 양상은 비슷할지언정 그 체험이 유도하는 결과와 효과는 아주 다르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갈하게 하는 침묵 등의 명상 행위는 분명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성숙의 여정으로 이끌어준다. 종교마다 그 표현이 달라 불교에서는 참선, 그리스도교에서는 기도, 유교 전통에서는 명상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다양한 양상의 마음 수련 말이다. 우리 삶에서 힘든 일이 닥칠 때나 어지러울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인스턴트화된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는다. 술에 빠지기도 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음란물에 심취해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일회용 해결책들은 결코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면서 오히려 인간 본성을 파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뿐이다.

참다운 성숙은 자기 극복과 시련을 동반하는 노력을 꼭 필요로 한다. 순간의 해결을 위해 파괴적으로 이끄는 것에 심취하기보다는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 지키고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시간을 일상의 삶에서 조금씩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심종혁 서강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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