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5공 경제정책과 지금 대선공약

입력 2022/01/25 00:05
수정 2022/01/25 14:40
전두환 평가 엇갈리지만
경제성과 부정언급 드물어
재정효율·민간자율에 기초
지금 대선공약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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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그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언급이 회자된 바 있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두환정부의 경제 실적을 폄훼하는 후보가 없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 때문일 것이다. 전두환정부는 20%를 넘나들던 인플레이션을 3% 내외로 낮췄을 뿐 아니라, 재임 기간 7년 동안 평균 10%의 성장을 달성했다. 경상수지를 흑자로 전환시켜 외채위기 벼랑에 선 경제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우리 2배 정도의 소득 수준을 향유하던 남미의 선진국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와, 아직 1인당 소득 2000달러에도 이르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운명이 뒤바뀐 시기였다. 취업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웠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나란히 성장했다.


양극화라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배경으로 정부 출범과 함께 시행된 '경제 안정화 종합시책'을 꼽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김재익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강력히 추진된 이 시책의 키워드는 인플레이션의 하락을 의미하는 '안정'과 시장기능의 작동을 의미하는 '자율'이었다.

안정을 위한 첫걸음은 재정 개혁이었다. 전년도 예산을 일정 비율 증가시키는 것을 당연시했던 관행을 깨고, 부처마다 예산의 당위성을 입증해야 하는 '제로베이스' 방침을 도입했다. 군사정권이었지만 국방비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국방비의 상대적 규모는 크게 감소했다. 1981년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었던 재정 지출 규모를 5년 뒤 16%까지 낮췄으니, 요즘 경제 규모로 환산하면 무려 150조원가량을 절감한 셈이다.

그렇게 만성적 재정 적자에서 벗어난 정부는 이제 납세자에게 손을 더 벌려야 할 필요도, 발권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마침내 한국은행은 양곡관리기금의 구조적 적자와 관치금융의 잔해를 뒤처리하던 '남대문출장소'에서 벗어나,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자 개별 품목의 가격까지 규제했던 정부 통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웃사촌이 운영하는 목욕탕에 찾아가 목욕비 올리지 말아달라고 읍소 내지 협박해야 했던 이장님의 민망한 업무는 없어지고, 정부 대신 주민들의 목욕 수요를 반영해 가격이 결정됐다.

시장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노력은 경제 전반을 관통하면서 지속됐다. '정부 주도 개발' 시기에 산업정책을 뒷받침하던 대규모 정책금융을 축소하고, 정부 통제하에 있던 금융기관의 예대금리도 자유화해 금융시장이 '시장'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수입시장을 과감히 개방해 국내 산업의 경쟁을 강화하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확대했다. 어쩌다 부잣집 친구의 생일에 초대돼야 볼 수 있었던 바나나가, 전 국민의 대중적 과일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의 정책 방향과 궤를 크게 달리하는 작금의 대선 공약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고 저출산·고령화·양극화가 극심한 오늘날, 40년 전의 정책 메뉴는 철 지난 유행가일지 모른다. 그러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정부가 돈을 물 쓰듯이 쓰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은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가 아닌 민간의 자율과 창의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선거 때만 되면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처럼 유권자를 현혹하는 궤변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크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며칠 전 들른 단골 밥집에서, 대선 관련 뉴스를 보던 주인 아주머니가 무심코 흘린 탄식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나라, 꽤 괜찮은 나라였는데…."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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