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첫 100일

윤경호 기자
입력 2022/05/14 00:05
美 대공황 때 루스벨트처럼
취임 초 첫 100일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한다
尹 정부도 국정과제 우선순위
제시하고 국민 설득 매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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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히는 칼럼이니 생활 속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정치 공방이나 사회 갈등은 주중에 다뤄지는 걸로 충분하다고 봤다. 그렇지만 사흘 전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그냥 넘기는 건 멋쩍었다. 의도적인 외면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서 한마디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통령제의 원조는 미국이다. 유럽 몇 나라 왕정이나 로마 공화정과는 또 다른 지배 체제다. 공화정의 기본 정신 위에 대의제를 활용해 왕정에 견줄 만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233년 동안 4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전임에서 후임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형식은 제각각이었다. 후임자 성향에 따라 달랐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땐 대통령직 인수인계 과정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존 케네디나 버락 오바마 같은 젊은 대통령은 권력을 넘겨받는 언저리를 정치적 이미지 제고에 활용했다.

루스벨트는 대통령직 인수인계와 취임 초기 보여준 능력으로 성공한 리더십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강력한 정책을 집행하면서 국민에게 성큼 다가선 덕분이다. 대공황에 대처하며 헤쳐나가는 일이었다. 여기서 '첫 100일(the first hundred days)'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첫 100일은 새 리더십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시간이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다. 어느 때보다 국민에게 주목받고 강한 추진력을 갖는 시기다. 위기일수록 중요성이 더 부각된다. 정권 인수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준비했느냐에 따라 첫 100일의 성과와 평가도 비례해서 나타났다.

취임 전 인수위원회는 대선캠프에서 제시했던 공약을 정책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다. 타임라인도 정교하게 짜야 했다. 인수위가 선거 승리 후 공과를 배분하는 자리에 그치지 않았어야 하는 이유다. '준비를 위한 준비' 업무가 인수위의 역할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대통령직 인수인계는 5번 이뤄졌다.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 취임 후보다 당선인 시절과 인수위 활동에 더 컸다.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표를 찍지 않았던 유권자조차 웬만하면 박수를 보냈다. 인수위 시절 지지율은 통상 70%대에서 80%대를 웃돌았다. 윤석열 당선인의 지지율은 50%대에 턱걸이했다. 갤럽 조사에선 40%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국정과제를 가다듬어야 할 때 지방을 돌며 선거 때처럼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다녔다.

이제부터는 첫 100일을 주목하는 수밖에 없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그룹 '플랫폼 9와 4분의 3'이 펴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첫 100일 분석 보고서에서 몇 가지 교훈을 읽었다. 첫 번째는 우선순위 문제다. 나열된 정책 가운데 우선순위를 부여한 뒤 여러 채널을 통해 공개하고 반복적으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극복, 경제 회생, 기후위기, 미국의 국제적 위상 회복, 보건복지, 인종 평등, 이민 등 7가지를 선정했다. 두 번째는 일관성과 실천이다. 선정된 정책 우선순위에 대해 일관되게 힘을 실어 실천하는 것이다. 바이든은 첫 100일 동안 행정명령이나 대국민 메시지 등 대통령의 업무를 7가지 우선순위 의제에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의 나라 상황은 이렇게 꿰고 있는데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엔 익숙하지 않다. 6대 국정 목표와 110대 과제를 접했지만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정작 제외했다는데 여성가족부 폐지와 사드 추가 배치 같은 논란성 공약만 여전히 잔상처럼 남아 있다.

보고서의 결론 같은 조언이 와닿는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시대에 국민은 쉽게 분노하고 실망한다. 기대를 키우면 실망도 커지는 만큼 대통령의 진중함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섣부른 약속을 절제해야 한다. 국민의 기대 수준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윤경호 MBN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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