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한국형 CES

입력 2022/05/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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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초면 약 1만명의 한국인이 CES를 보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간다. CES에서는 대기업, 스타트업 관계자는 물론이고 유명 정치인이나 공무원, 언론인들을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 우스개로 한국 대기업과 거래를 트기 위해 CES에 참가한다는 스타트업도 있다. CES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은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얻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술과 시장 흐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묻는다. 한국 IT산업은 세계 수준인데, 왜 한국에는 CES 같은 전시회가 없느냐고. CES, MWC, IFA 같은 글로벌 전시회를 유치해 와야 한다고 한다. 귀국 후 CES 리뷰 세션을 열기도 하고, 한국 전시 기업들을 모아 한국형 CES를 열기도 한다.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CES가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1990년대 IT를 대표하는 전시회는 컴덱스(COMDEX)였다. 미국은 물론 세계 많은 나라에서 컴덱스 뒤에 국가명이 붙은 전시회들이 열렸다. 컴덱스를 만든 사람은 유대인 출신의 카지노 황제 셸던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이다. 1995년 일본의 빌 게이츠로 불리던 37세의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8억달러를 주고 컴덱스를 인수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컴덱스는 무대에서 사라졌고, CES가 왕좌를 차지했다.

CES는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가 주최한다. 1924년 라디오제조협회로 창립된 CTA는 1950년대 라디오·TV협회, 라디오·TV·가전협회, 가전산업협회를 거쳐 2015년 현재 이름으로 바꾸었다. CTA는 기술과 산업의 변화에 따라 신산업 분야 기업들을 회원으로 유치하면서 협회의 외연을 넓혀왔다. 그리고 1967년 첫 CES 전시회를 열었다.


필자는 CES를 세계 최고 전시회로 만든 것은 CTA의 개방과 혁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CES가 가전은 물론 게임, 자동차, 헬스케어, 푸드테크, 수면테크, 애그리테크, 메타버스, 블록체인, 항공우주 등 모든 산업 분야의 제품과 기술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도 놀랍지 않다.

우리나라도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이후 전시회의 국제화·대형화를 추진해왔다. 전시장과 전시회의 양적 부문에서는 많은 성장을 했으나 질적인 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에서 CES 같은 전시회가 나오려면 첫째, 전시장과 주변 인프라스트럭처의 확충이 필요하다. 특히 서울의 전시 공간 부족이 전시회 대형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둘째, 전시 주최자의 기획·마케팅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BTS와 오징어 게임처럼 전시회도 철저한 고객·시장 분석과 탄탄한 기획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도 부처 간 칸막이를 낮추고 신산업 전시회를 공동 지원하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모빌리티, 의료, 에너지 같은 산업군이나 스타트업 같은 기업군은 관련된 모든 부처가 함께 지원해야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동기 코엑스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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