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이코노미스트] 감자칩과 컴퓨터칩을 구별하는 지혜

입력 2022/05/26 00:05
"무슨 산업이든 돈 벌면 그만"
방관적 산업정책 펼쳐온 미국
플랫폼기업 뜨고 제조업 위축
한국은 사용할 수 없는 전략
새 공급망서 강점 분야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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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서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한미동맹을 확인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반도체와 미래 모빌리티 등 첨단 기술이 상호협력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게 되어 그 의미가 남달라 보인다.

부시(1세) 대통령 때 경제고문을 지낸 마이클 보스킨은 같은 100달러를 번다면 감자칩(농업을 대변)과 컴퓨터칩(반도체·첨단 기술을 대변)이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의 기괴한 버전처럼 들린다.


산업정책에 관한 미국의 그러한 인식과 기조가 한국에 반도체 동맹을 제안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고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런데 아직도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는 여전히 제조업과 산업정책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감자칩과 컴퓨터칩을 보는 관점처럼 GM(자동차 제조업)과 우버(공유 모빌리티 플랫폼) 사이에 실리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어쨌든 미국 시민들은 차를 타고 다니니까). 컬럼비아대학의 바그와티 교수는 제조업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제조업 페티시'로 치부했다. 갤브레이스조차 저렴한 공산품을 공급하는 중국으로 인해 미국인들이 서비스업에 집중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20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산업정책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방관자적 전략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눈부신 정보기술(IT) 발전과 맞물리면서 개방형 혁신이 만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GAMAM(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옛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기술 플랫폼 자이언트들은 값싸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글로벌 공급망 덕분에 (그리고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금융비용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사용자 서비스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플랫폼 생태계는 제조업과 공급사슬을 뒤로 감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였고, 소비자들이 반길 수밖에 없는 가치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뭐든지 주문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것이 나한테 어떻게 공급되는지 알아야 하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온라인 시대의 도래는 플랫폼의 가치 전달 방식이 더 크게 각광받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는 소비 방식의 변화에 머물지 않으며,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기술 플랫폼이 되는 것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서 디지털 전환과 산업 혁신을 이끈다. ABCD(인공지능,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기술의 끊임없는 발전도 이런 혁신과 맞물려 서로 밀고 당기면서 이 흐름을 상당 기간 지속시킬 것이다.

작금의 변화는 과거의 산업혁명이나 기술 혁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의 여러 양상을 바꾸고 있다. 생산과 공급 방식뿐만 아니라 유통과 소비까지 아우르고, 플랫폼이라는 거대 생태계와 광범위한 기술 및 제도 변화를 통해 탄탄하게 지지된다는 점에서 가히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글로벌 공급망이 이에 걸맞게 적응하지 못한 것은 현재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한 원인이 된다. 이 위기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시대가 열릴 것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의 지정학적·정치경제적 입지를 고려하면, 신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역할과 입지를 재정립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때다. 미국처럼 자발적인 혁신에 맡길 수만은 없다. 신글로벌 공급망이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IT 서비스 역량을 키워야 하지만, 우리가 잘하는 반도체, 뉴 모빌리티, 배터리, 디스플레이, 5G·6G 등 제조업과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에도 집중해야 한다. 우버도 GM의 자동차가 있어야 공유 모빌리티를 운영할 수 있고, 반도체 없는 메타버스 가상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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