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의 창] 전자의무기록시대의 종이차트

입력 2022/07/01 00:04
진료기록 바리바리 쌓아두고
환자 상대하는 비효율 여전
데이터로 전송해주면 될텐데
병원 옮길땐 자료 넘기면 끝
정보교류 의무화로 첫발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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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료실에는 전국에서 심장수술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이 수시로 방문한다. CT, MRI, 심장초음파 등 영상검사 자료를 담은 CD와 그간의 진료 과정을 망라한 의무기록 사본, 즉 종이의무기록 복사본을 거의 책 한 권 두께로 가져온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EMR)으로 병원정보시스템이 개선됐지만, 이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왜 지금도 종이기록을 가져와야 할까? 시범사업 형태로 진료 정보 교류를 전산화한 곳도 있으나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료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양의 종이기록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더 커진다.


모든 내용이 전자차트에 데이터로 남아 있는데 이 내용을 복사해 종이기록을 가져가는 것보다, 데이터 형태로 전송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져온 기록을 모두 진료실에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검토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록이 필요할지 모르니 그냥 모두 복사해서 가져온다.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니 이는 환자 탓을 할 수 없다. 당연히 데이터 형태로 받거나 전자차트 형태로 받아야 하고, 이도 아니면 자동 스캔하는 초고속 팩스형 장비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EMR 시스템에 넣어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은 현 상황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이 모두 짊어져야 할 부분이다.

다른 병원으로 가 새로운 의사를 만나는 것은 일종의 진료 의뢰 형태가 된다. 이 경우 관련 기록이나 자료를 전송하고 필요하면 클라우드를 이용해 영상 장비도 미리 업로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무적으로 하면 해결점이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일부 병원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에서 활성화돼 종이와 CD가 사라지게 된다. 병원정보시스템을 전산화한 시점이 먼저이고 국가표준에 대한 제시는 아직도 시도만 하고 있다.


처음부터 표준화가 되지 못했으니 병원 입장에서는 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점, 대략 2000년대 초중반 즈음에 각 병원의 진료 흐름 또는 그때까지 해온 진료 방식을 병원정보시스템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늦었지만 표준화 사업이 함께해야 한다.

과연 이 모든 일이 기술이 없고 능력이 모자라 못하고 있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과정 자체가 어떻게 이뤄지든 간에 현재는 관심이 적은 것일 뿐이다. 환자 진료 정보 교류가 이뤄지는 시점, 진료 행위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정보 교류를 의무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 시스템을 잘 만들어놓으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진료 전에 미리 환자 자료를 검토할 수 있고 환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치료법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결국 국가가 할 일은 이러한 상황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데이터를 생산·유지하는 각 의료기관에 적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병원정보시스템 전산화는 대부분 각 병원의 재원으로 독자적으로 이뤄져왔다. 국민을 위한 안전한 헬스케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선행돼야 하고, 그렇게 해야 불필요한 소모성 일들이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데이터가 모여 상상하지 못하는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초진 환자의 이전 기록과 자료를 진료 현장이 아닌 예약 시점에서 종이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에서 확인하는 머지않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김경환 의료정보 리더스포럼 의장·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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