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시평] 낙태

입력 2022/07/04 00:04
수정 2022/07/05 10:42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3년간 개선입법 손놓은 국회
국민 건강·생명 걸린 중대사
국회 존재이유 방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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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은 태아의 권리의무를 사람과 구별하여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형법은 사람을 살해하면 살인죄로, 태아를 살해하면 낙태죄로 처벌하고 있었다. 우리 법은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은 태아의 지위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선언하였지만, 태아를 '생성 중의 생명'이라고 표현하여 온전한 생명인 사람과 구별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 태아는 여성의 장기와 같이 취급되었고, 낙태는 범죄가 아니었다. 기독교에서는 수태 후 10주 정도가 되면 영혼이 태아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로마법에서도 태아를 살해하면 살인죄로 처벌하게 되었다.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서구의 법체계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가 채택하였다.


하지만 태아가 곧 사람은 아니라고 보았으므로, 어느 나라나 일정한 범위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두었다. 우리나라도 형법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면서 모자보건법에 따라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19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당시 헌법재판관 4인은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에 이르기 전에까지 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위헌이라고 보았다. 3인의 재판관은 마지막 생리 기간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판단 아래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2인의 재판관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임신한 뒤 일정한 기간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따라서 임신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지는 낙태는 처벌할 수 있고 국회가 2020년 말까지 헌법에 맞게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그 시한까지 개선 입법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위헌으로 효력을 잃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최근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이 합헌이라고 판결하면서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 판례를 변경하였다. 종전 판례는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기 전에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고 있었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다수가 된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허용할지는 주 정부와 의회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지, 연방정부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 판례를 바꾼 것이다. 보수 성향의 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하거나 제정하기 시작하였다.

낙태는 가임 여성과 태아에게는 생명과 인생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것은 낙태를 자유롭게 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낙태를 전면적이고 일률적으로 금지해서는 안되고 태아의 독자 생존 능력 등을 고려하여 제한적으로만 금지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낙태를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 제한할 것인지는 국회만이 결정할 수 있다.

낙태를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그렇다고 낙태를 제한 없이 허용하면 태아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거나 득표에 도움이 되는 법률은 소수당의 거센 반대가 있어도 신속하게 입법하는 국회가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낙태와 같이 어려운 문제를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 의무이고 존재 이유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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