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책과 미래] 고전을 읽는 법

입력 2022/08/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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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명저 '단테 『신곡』 강의'(교유서가 펴냄)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오랜 절판 상태여서 독자들이 재출간을 갈망했던 책이다. 한때 헌책방에서 20만원 가까이 거래되기도 했다. 좋은 책은 독자도 알아보는 것일까. 일주일 만에 초판이 모두 팔려 재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본의 단테 연구와 번역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책답게 다시 읽어도 감탄이 나왔다. 당시까지 나온 일본어 번역판 3종을 늘어놓고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 해설하는 장면은 인문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많은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다. 때때로 한 작품을 제대로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곡'의 유명한 첫머리는 "인생 나그넷길 반 고비에" "인생길 한가운데에" "칠십 길 사람 목숨 반 고비에"로 번역자마다 다르다.


어느 번역이 좋을까. 저자는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 생명길 한가운데에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번역에는 '칠십'이란 말이 나온다. 오역일까. 아니다. 이야말로 깊은 공부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에선 남자의 절정기를 아크메(akme)라 했다. 아크메는 전통적으로 35세부터 40세 정도이고, 인생 전체는 70년 정도였다. 아울러 '시편' 90편엔 "인생 기껏해야 칠십 년"이란 표현이 나온다. 히브리인에게도 인생은 70년이었다. 또 단테는 '향연'에서 "인간이 자연의 힘으로 최고 정상에 올라서는 때는 35세 무렵"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문헌적 근거에 철저하게 바탕을 두고 텍스트 의미를 따져 묻는 사고방식이다. 아무 근거 없이 그럴듯한 소리만 늘어놓는 최근의 유행은 '인문 뻘짓'에 불과하다. 인문학이 약해지면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늘어난다.


전통에 따라 단테는 35세 무렵 인생 절정에 오른다고 여겼고, '인생길 한가운데'란 결국 35세를 가리킨다. 더욱이 단테는 이 나이에 프리오레(행정위원)로 선출돼 권력 핵심에 진출해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칠십 길 사람 목숨 반 고비에"는 독자에게 이를 모두 알리고픈 번역자의 고투를 드러낸다. 남의 번역, 함부로 평하는 게 아니다.

그다음에 단테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라고 말한다. 후회의 문장이다. 가장 높이 오른 공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쭐하고 싶을 때 겸손한 사람만 길을 잃지 않는다. 단테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바닥이 끝은 아니다. 단테는 이 작품을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세상을 떠돌 때 썼다. 지혜로운 이들은 사랑을 통해 절망의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줄 안다. '신곡'은 이 오묘한 인생 이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에서 배우는 것, 이것은 인생의 진짜 기쁨을 낳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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