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기고] 광복 77주년의 시대정신은 '첨단과학기술'

입력 2022/08/12 00:04
71139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 2년여간 미국 의회는 미국의 과학기술, 더 좁게는 반도체 등의 전략기술 분야를 진흥시키기 위한 예산 지원에 관한 법을 준비해 왔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도달한 결론은 'Chips and Science Act'라 불리는 반도체 및 과학기술 전반의 경쟁력 강화 법안으로, 5년간 2800억달러의 막대한 예산을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이 법안에 최종 서명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 지원될 520억달러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투자이다. 미국은 필요한 첨단반도체 중 12%만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외국, 특히 우리나라와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대만에 핵심 전략물자인 첨단반도체를 의존하는 것은 안보 측면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미국 국방에만 연간 19억개의 반도체 칩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위기의식이 이 법을 통과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전체 지원 패키지 중 반도체는 20%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미국 과학기술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투자될 것이다. 미국과학재단(NSF)에 지원될 810억달러가 그중 하나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 패권을 뜻하는 팍스테크니카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을 가진 나라들이 외교와 국방을 좌우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도 첨단기술을 확실하게 갖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못한 나라는 견제를 당하거나 심지어 침탈을 당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외국 정상이나 지도자들이 해외를 방문할 때, 방문국 정부보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먼저 찾는 일이 자주 목격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중심에 기술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올해는 광복 77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9세기 말 우리 선조들은 열강들이 어떤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국권을 빼앗겼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지금도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열강들이 격돌하는 동아시아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권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우리만의 첨단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첨단기술을 가진 힘으로 나라의 주권을 지킬 수 있으며, 기술 주권이야말로 한 나라의 주권을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힘인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첨단과학기술국가'를 대한민국이 지향할 비전으로 삼는 것이다.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선진 각국으로부터 협력과 동맹의 요청을 많이 받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견제도 많이 받고 있다. 지금 거의 모든 기술선진국들은 유례없이 강력한 기술보호주의에 돌입했으며, 어떻게든 첨단기술산업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

광복 이후 몇십 년 동안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인 산업화는 뒤처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기술선진국으로부터 열심히 기술을 배워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개발한 첨단과학기술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주권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공고히 해야 할 때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가장 앞서 있는 기술들을 선도해 나가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앞세워 정진을 거듭해야 한다. 그러한 다짐이야말로 우리가 77주년 광복절을 맞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