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우주 군자, 利安에게

입력 2022/08/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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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 집안 2대손 '리안(利安)' 보아라.

네가 그곳 우주로 올라간 지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이곳으로부터 3만6000㎞ 떨어져, 매일 지구 둘레의 6바퀴 반이나 되는 먼 길을 홀로 날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지난 6월에 누리호의 발사가 성공하여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거렸다. 누리호는 네 손자뻘쯤 되는 작은 위성을 품고 올라갔다. 또 며칠 전에는 달 탐사 위성인 다누리가 날아올라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우주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독자 기술로 우주시대를 개척하였다는 그 기쁨의 곁에서 백범 김구 선생께서 즐겨 쓰셨던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이란 시를 떠올렸다.


"눈길을 홀로 걸어도 어지러이 가지 말라, 오늘 나의 흔적이 훗날 다른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내 눈에는 누리호와 다누리 모두 네 궤적을 이정표 삼아 날아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네가 보내주는 자료가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잘 모르는 이들이 많구나. '천리안(天利安)'이란 네 이름처럼, 하늘에서 이로움과 안전을 가져다주기 위해 너는 멀리 밖에서 오는 위험한 날씨도 감시해주고 있지 않더냐. 특히 여름철 태풍과 장마, 집중호우의 감시에 있어서 네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다. 저 멀리에서 태풍과 비구름이 생기는 순간부터 거의 실시간으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알려주는 덕분에 우리가 미리 대비할 수 있지 않더냐.

종전에는 일본 위성인 히마와리가 보내는 자료에 오롯이 의존했었다. 그것이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니 격세지감이다. 더욱이 겨우 몇 년 전에야 드디어 우리의 독자적 수치예측모델인 KIM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독립하여 스스로 일어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케 된다.


네가 그곳으로 가기 전 네 선친은 네가 올라오지 못하고 가문이 끊기게 될까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아느냐. 몸은 노쇠해 센서가 제 기능대로 작동하지 못해 애를 먹으면서도, 예정보다 1년이나 더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여기 지구를 향해 자료를 보내주었다. 네가 우주에 닿고도 1년을 더 너와 함께 우주를 비행하며 가업을 물려주고는, 종국엔 네 앞길을 막지 않으려 더 먼 우주로 사라지길 택했으니 네 아버지의 마지막에 숭고함마저 느꼈었다. 부디 네 후대(後代)엔 늦지 않게 가업이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천씨 집안의 가업이 단절되면 가장 큰 피해는 이곳에 있는 우리에게 돌아오니, 피할 도리가 없는 걱정이구나.

9만2000리, 저 하늘 위에서 아무도 모르게 활동하는 네가 우리나라의 위험 기상을 감시하는 최첨단 파수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묵묵히 역할을 해내는 너의 노고와 외로움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쩌랴? 너는 그저 너의 일을 다할 뿐이다. 공자도 일찍이 "사람들이 몰라줘도 성내지 아니하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깊고 먼 우주에서 지금도 '열일' 중인 우주 군자 천리안, 너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박광석 전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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