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춘추] 주공(住公)이 그립다

입력 2022/08/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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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이 이래저래 시끄럽다. 기존의 낡은 주공아파트 5930가구를 철거하고 1만2032가구가 새로 지어지는 웬만한 도시 하나를 세우는 대역사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재건축이 회자되는 아파트들 중 상당수가 주공아파트이다. 잠실주공아파트 등 이미 재건축이 끝나 영어와 유럽식 이름이 합쳐진 아파트로 탈바꿈한 주공아파트도 많다.

서민의 내 집 마련 시작이 돼 주었던 그 많던 주공아파트는 어디로 갔을까. 문득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생각난다. 주공아파트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지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합쳐지기 이전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어 공급한 아파트다. 1980년대 주공아파트의 모습은 5층 이하 저층에 작은 평수로 기억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30평대 고층 아파트가 주공아파트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공공아파트이므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보통 대단지로 형성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필자도 주공아파트에 오랫동안 살았는데 봄이면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에는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이 어우러졌다. 대단지로 조성돼 단지 근처에 학교도 있어 아이들이 주공아파트에 산다고 놀림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는 일도 없었다. 나만의 기억인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니 없다는 대답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때는 다 주공이었잖아?"라고 덤덤히 말한다. 살기 좋다는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위치에 소득 수준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살고 교육도 같이 받고 위화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살기 좋은 집이다.

당시에는 개발 초기인지라 좋은 위치의 공공택지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울 주변 좋은 위치의 택지는 많고 좋은 위치의 공공택지에 민영아파트가 더 많이 지어진 것에서 변명이 궁색하다.


공공택지에는 좋은 품질의 공공주택을 저렴하게 거의 이윤 없이 대단지로 공급해야 한다. 공공택지를 민영에 불하해 민영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집을 공급받는 서민이나 공기업이 아닌 특정 사기업에 이익이 집중될 수 있어 가급적 피해야 한다. 공공택지에 공공주택 공급 비율을 제한하고 민영 참여를 늘리는 것은 공기업의 공공성을 후진시키는 정책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시세와의 차이가 커져 투기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확률이 너무 낮으면 로또가 되지만 예측 가능한 높은 확률은 기회가 된다. 서민에게 로또가 아닌 기회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필자 또래와 선배들은 내 집 마련이 지금처럼 언감생심은 아니었다. 형편에 따라 10만원 혹은 5만원씩 매월 불입하는 청약저축에 가입하고 순서를 기다려 주공아파트에 청약하거나 한꺼번에 청약예금을 평형에 따라 넣고 1순위가 오기를 기다려 민영주택을 청약하는 것으로 단순했다. 같은 직장의 동료들끼리 직장조합을 결성해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상의 정책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했다. 언어학자가 돼야 해석이 가능한 어려운 영어 이름의 고급 아파트에 뜬금없이 적은 가구 수의 임대주택을 끼워 넣는 것은 서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아니다. 대형 고급 아파트는 민간에서 아주 비싸게, 서민의 아파트는 저렴하고 살기 좋게 공급하는 정책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나는 주공아파트가 그립다.

[안만식 서현파트너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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