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칼럼

[매경의 창] 체외순환사를 아시나요

입력 2022/09/23 00:05
심장 수술의 숨은 공로자
인공심폐기 운용하는 이들
국가가 정식직업 인정하고
의료기관 의무배치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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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평생, 예외 없이, 쉬지 않고 일한다. 멈춤은 사망을 의미한다. 심장이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소를 소모한 정맥혈을 폐로 보내 산소가 가득한 동맥혈로 바꾸게 하고, 그 혈액을 온몸으로 힘차게 박출시킨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심장은 가느다란 관상동맥을 통해 스스로 혈액을 공급한다.

심장도 문제가 생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해결 방법은 없었다. 서구 의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 외과적 치료를 위해 무수한 시도가 있었고, 결과는 항상 실패로 귀결되었다. 심장이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실패의 상처는 깊었다. 1800년대 후반 외과계 대표 석학 스티븐 패짓은 심장 수술은 절대 하지 말 것을 교과서에 언급하기도 했다.

심장의 내부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었다. 심장을 멈춰야 했다.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심장 내부를 고쳐야 했다. 환자를 잃지 않고, 심장을 멈춘 후 온몸에 혈액을 순환시켜야 했다.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를 상상했고, 불과 70년 전 1953년 인공심폐기가 개발됐다. 미국인 의사 존 기번은 인공심폐기를 이용한 최초의 심장 수술을 성공한다. 심장을 멈추고, 심장을 수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장 수술은 흉부외과 의사가 집도한다. 때로는 한나절이 걸리는 복잡하고 큰 수술이다. 생각해보면 수술실에서 집도의가 수술을 하며 인공심폐기 운영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수술 중 인공심폐기의 운용을 누가 할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들은 심장병에 대한 고도의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고, 심장을 대신하는 기기를 운영하는 만큼, 환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야 할 것이다. 또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와는 바늘과 실처럼 모든 면에서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이들을 체외순환사라고 부른다. 낯설지만 이들은 심장 수술에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자 전문직업인이다.

선진국의 경우 이들의 중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체외순환학교를 국가나 학회가 운영하고 관리한다.


엄격한 3년 내외의 교육 후 자격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심장 수술 초창기인 1950~1960년대에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직접 인공심폐기를 운영하며 이를 조력하는 인력들을 각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양성했다. 이들이 현재의 220여 명의 체외순환사의 뿌리가 되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는 이들에 대하여 꾸준한 교육을 했다. 2~3년 전부터 준비한 인증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고, 학회 내의 유일한 특별회원으로 대우하고 있다. 그들도 자체적으로 체외순환사협회를 조직하여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심장 수술을 시작한 지도 어언 60여 년이 지났다. 고통받는 많은 심장병 환자들을 수술로 새 삶을 찾게 해준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환자를 위해 노력한 체외순환사의 헌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까지나 비공식 직군으로 희생과 헌신을 하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정식 직업군으로 인정하고 안정적인 지원을 통해서, 심장 수술을 응급 혹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의료기관에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심장 수술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흉부외과 의사는 환자의 심장과 연결된 인공심폐기를 안전하게 운영해주는 체외순환사가 있기에, 환자의 생명을 지키며 수술을 할 수 있다. 어렵고 위험하다고만 알려진 심장 수술이 일상의 안정적인 치료법으로 정착된 의료 선진국 대한민국이다. 이제 체외순환사의 헌신과 노고를 국민들이 알아주고, 국가가 지켜주어야 할 시간이 왔다.

[김경환 서울대병원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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