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KAIST·식약처 샴푸전쟁, 규제가 기술 못따라가는 현실 한심하다

입력 2021/12/08 00:02
대학과 기업이 혁신기술을 활용해 만든 염색효과 샴푸에 대해 정부가 기존 단속 잣대로 제동을 거는 한심한 일이 벌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4일 중장년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다모다 프로체인지 블랙샴푸에 4개월간 광고를 금지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기능성 화장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이 아닌데도 제품 명칭과 제조 방법, 효능·효과 등에 대해 기능성 화장품이나 의약품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는 광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상 기능성 샴푸로 쓰려면 식약처가 지정한 염모나 탈모 성분을 제품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제품은 기존 염색약에 들어가는 염모제를 쓰지 않는 신기술로 만들어졌다. 법적으로는 기능성 샴푸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샴푸는 이해신 KAIST 교수가 5년간 폴리페놀 연구개발을 통해 만든 세계 최초의 제품으로, 사과를 깎은 뒤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 교수는 2018년 논문 인용 기준 세계 상위 1%의 과학자로 선정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교수와 회사 측은 이번 처분으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지면 규제가 없는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입장이다. 식약처는 "새로운 염모 성분도 원료를 등록하고 심사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이것은 혁신기술에 걸맞은 유연한 대응이라기보다 기존 틀을 고집하는 조치일 뿐이다. 시대에 뒤처진 정부 규제가 신기술을 못 따라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의 규제장벽과 모호한 제도 때문에 혁신기술이 멈춰선 경우는 이뿐이 아니다.


자율주행 배달로봇만 해도 로봇을 인도와 차도, 횡단보도에 다닐 수 없게 한 도로교통법과 물류 주체를 사람으로 한정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등에 묶여 개발이 막힌 상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없는 신사업 모델로 승부하는 스타트업들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술을 만들려면 전통산업에 맞춰진 법과 제도, 규제정책부터 손질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기업은 국가 경쟁력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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