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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4시] 영원한 '양심냉장고'를 기리며

이재철 입력 2015.05.07 17:04   수정 2015.05.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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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죠."

얼마 전 작고한 남편을 회상하는 김유화 씨(52)의 눈에 그리움이 잔뜩 묻어났다. 쾌유를 바랐던 남편은 안타깝게도 폐암과 사투를 벌이다 지난 2월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바로 '양심냉장고 1호'로 국민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종익 씨다.

매일경제 취재팀은 올해 초 '선(線)지키는 선(先)진사회' 연중기획을 준비하며 이종익·김유화 씨 부부를 인터뷰하려 했다. 이들은 1996년 4월 새벽 티코 승용차를 운전하다 빨간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반듯이 멈춰섰다. 그저 신호를 잘 지켰을 뿐인데 개그맨 이경규 씨가 환호성을 지르며 큼지막한 냉장고를 선물했다. '양심냉장고 1호'의 탄생이었다. 취재팀은 작은 '선지킴' 하나로 화제가 된 이들 부부를 다시 찾아 선지킴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최근에야 비로소 인터뷰에 응한 김씨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직업재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애틋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선의 의미를 전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 부부에게 당시 인생의 낙은 잠시 근교인 경기도 가평 등을 돌며 바람을 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규정속도와 신호를 정확히 지키는 이들 부부 차량을 향해 다른 운전자들은 짜증스럽게 경적을 울렸단다.

"왜 선을 왜 잘 지켰냐고요? 솔직히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죠. (장애를 가진 약자로서) 늘 도로 위에서 위험을 느끼게 되는데 어떻게 우리가 먼저 선을 무시할 수 있겠어요?"

뜻밖에도 양심냉장고의 탄생은 탈법·탈선을 부추기는 사회적 압박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는 약자들의 절박함과 맞닿아 있었다. 방송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의 선지킴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얼마 전 열한 살짜리 아이가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사망한 기사를 봤어요. 운전자가 아이 입장을 생각했다면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19년 전 이들 부부는 수백억, 수천억 원의 정부 예산으로도 이룰 수 없는 '선지킴'의 가치와 감동을 일깨워줬다. "늘… 잘…. 지켜요"라며 웃던 이종익 씨의 모습을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추억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부 = 이재철 기자 hummi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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