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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日수출규제 '국산화'론 대응 못해

원호섭 기자
입력 2020.07.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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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계, 과학기술계가 장기전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소재·부품 생태계 변화에 대해 취재하며 만난 산업·과기계 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난 1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장기 계획은 마련돼 있는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인력·시스템이 충분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고 산학연이 함께 참여하는 연구개발(R&D) 과제를 추진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수출규제에 대응해왔다. 산업계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오히려 한국에 약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학연이 뭉쳤다. 비싸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던 '방사광가속기'도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과기계의 지적에 정부는 투자를 결심했다. 성과도 있었다.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를 비롯해 수입 다변화 등으로 국내 산업계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돈을 쏟아붓는다고 일본이 쌓아온 기술력을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개발에 수백억 원이 필요한데, 국내 반도체 업계가 1년에 사용하는 양은 1200ℓ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산화에 성공해도 경제성이 떨어진다.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이 기다리고 있다. 국산화에 성공한 불화수소도 원료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 방안이 '국산화'에 초점을 맞추면 안되는 이유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서 소재·부품의 100% 국산화는 불가능하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을 비롯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금과 같은 지원 방안이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우선이다. 과기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상 소재·부품 R&D를 진행하면서 수요자가 확실해 판로가 확보된 것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지만 한계가 있다. 한국 과학·산업계는 그동안 단거리 강자였다.


산학연이 똘똘 뭉친 지금이 장거리 선수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산업부 = 원호섭 기자 wonc@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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