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기자24시] 장애인 청년들에게 드리는 사과

이진한 기자
입력 2021/04/20 00:04
37705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며칠 전 취재원으로부터 질책성 문자를 받았습니다. 장애인 청년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에 대한 피드백이었습니다. 200자 원고지로 4장 분량에 달하는 장문이었습니다.

취재원은 절제된 문체로 기사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일목요연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장애인의 직업 세계에 대해 심층적인 기사를 다뤄줄 것으로 기대하고 협조했다"며 "기사 결과물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취재원은 이어 "개인마다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기사는 이미 목적과 방향을 다 정해두고 거기에 알맞은 말들로만 필터링한 느낌"이라며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녹취록 속에서 그들이 어떤 것들을 말하고자 했는지 들어보면 고맙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처음 문자를 받고 나서 한동안은 취재에 응해주신 장애인 청년들을 착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소라면 폴더에 담아 열어보지 않았을 녹취록을 꺼내 주말 동안 정독한 까닭이었습니다. 취재로 만난 장애인 청년 약 20명과의 대화를 다시 읽으면서 보다 또렷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한혜경 씨(25)는 "한국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선심성으로 일자리를 주고는 책임을 다했다는 식"이라며 "아무도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접할 때마다 장애인은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천민 같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습니다. 동시에 시각장애인 육상선수 박유진 씨(익명·24)는 "제도에 부족함은 있지만 자아실현을 위해 장애인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장애인들을 독려했습니다.


장애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복기하고 나서 다시 기사를 읽어봤습니다. 기사에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프레임 씌우지 말라"는 댓글이 순공감 순 1위로 집계돼 있었습니다. 장애인 청년들이 바라는 건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사로 오히려 오해가 생겼습니다. 장애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이에 장애인 청년들에게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사회부 = 이진한 기자 mystic2j@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