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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에어컨 수리할 '권리'

정유정 기자
입력 2022/08/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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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AS(애프터서비스) 신청을 했는데 한 달 뒤에나 방문 수리 일정이 잡혔어요."

예년보다 더위가 빨리 시작된 올여름, 이른바 '에어컨 AS 대란'이 벌어졌다.

가전업체들은 에어컨 수리가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꺼내 들었다. 여름철인 6~8월 에어컨 AS 신청의 대부분이 접수되는데, 가용 인력을 최대한 동원하더라도 야간과 주말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정부 지시로 수리기사의 안전지침을 강화해 AS가 더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센터 수리기사의 근무시간을 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업계 주장은 일견 이해가 가지만, 이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AS 대란의 해법이라고 볼 수 없다.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번번이 일어났기 때문에, 안전지침 강화는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연평균 2건가량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어쩌면 문제는 주요 전자업체들이 자사의 공식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를 허용하는 방침에 있을지 모른다. 미국과 유럽에선 '수리할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2020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 내에서 판매되는 전자기기 부품을 사설업체에서도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같은 압박에 스마트폰 사설 수리를 금지하고, 제품을 분해한 흔적만 발견돼도 수리를 거부해온 애플도 미국과 유럽의 AS 방침을 바꿨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미국에서 갤럭시 스마트폰 이용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국내에선 선보이지 않는 서비스다.

국내 주요 가전제품 기업은 사설업체에 자사의 부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사설업체에서 수리하면 품질이 저하되고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이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은 공식 서비스센터의 에어컨 AS를 한 달가량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품을 소유했지만, 수리할 권리는 없는 셈이다.

[산업부 = 정유정 기자 utoor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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