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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입력 2020.07.31 06:01:00 수정 2020.07.31 10: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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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1] 우리가 흔히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웃음을 통해 생활의 활력소를 얻기 위해서다. 북한 주민들도 스트레스 해소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북한식 코미디 프로그램인 '화술소품'을 즐겨본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코미디 빅리그'나 '개그 콘서트'라면 북한에는 이와 비슷한 '화술소품'이 있다. '화술소품'은 배우들이 분장이나 의상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화술을 통해 희극적 상황을 형상하는 문학예술 작품을 말한다.

'화술소품'이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1990년대 북한은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했다. 이 시기를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도 이 시기에 유행하게 된다. 이 구호에 맞게 1994년에 국립희극단을 창단하고 리순홍, 최광호, 함영신과 같은 재능 있는 희극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중에서도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술소품' 배우는 리순홍이다. 리순홍의 특기는 성대모사로 이름 있는 영화배우나 유명인들 목소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리순홍을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나라의 국보' '조선의 국보'로 부른다. 북한에서도 최근에는 결혼식이나 사적인 파티에 이름 있는 연예인들을 초대하는 것이 유행이다. 리순홍은 자주 초대돼 가는 연예인 중 한 명이고 그를 한 번 초대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은 500달러 정도라고 한다. 공식적인 공연과 달리 사적으로 초대되면 술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공연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해서는 안되는 말실수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리순홍은 여러 번 혁명화(탄광 노동단련)에 다녀왔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 특성상 문학예술은 선전선동의 수단이기 때문에 '화술소품' 내용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포함시키는 것은 필수다. '화술소품' 제작자들은 작품을 만들 때 실생활에서 주제를 찾고 거기에 당 정책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TV에 방영되는 것처럼 공식적인 공연에서는 이러한 문학예술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초대돼 간 자리에서는 정치적인 것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공연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부분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공감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쌍소리다. 쌍소리는 '화술소품' 배우들이 공연할 때 수위 높지 않은 19금에 유머를 더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리순홍의 작품 중 '일요일'에서 "신혼생활이 뭔 줄 알아? 한 놈은 신나고 한 놈은 혼나는 게 신혼이야"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일요일' 같은 작품은 TV를 통해 방영되는 공식적인 작품이고 사적인 공연에서는 이보다 조금 더 짙은 농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북한 주민들은 '화술소품'의 정치적인 메시지에 공감하기보다는 가볍게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내용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리순홍과 같이 유명한 배우들이 사적으로 초대돼 공연한 영상이 DVD로 제작돼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공연 영상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적발되면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은 즐거움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는 현실이 힘들어도 즐겁게 웃으면서 이겨내자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성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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