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느 시골 소녀의 평양 여행기

입력 2020.10.09 06:01:00
  • 공유
  • 글자크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이미지 크게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몰랐던 북한 시즌2-6]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이 본거주지를 벗어나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은 한국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타 지역에 가기 위해서는 인민보안부에서 '려행증'이라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특히 평양이나 국경지역으로 가는 여행증은 신청해도 쉽게 발급해주지 않아 담당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공공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주민들은 일가친척의 경조사나 평양에서 열리는 각종 축전(축제)에 초대되지 않는 이상 평양 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편에서는 어느 시골 소녀의 평양 여행기를 통해 북한 일반 주민들이 생각하는 평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시골 소녀는 함흥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 한 학급에 54명 정도 학생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평양에 다녀온 친구는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평양에 다녀온 친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면 평양 여행이 궁금한 아이들이 그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양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평양에서 지하철을 타보고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탔던 일화는 여러 번 들어 그 래퍼토리를 다 외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그 친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타본 놀이기구에 너무 무서워 "이 ○○들아 나 죽는다. 나 내려놔라!"라고 소리치고 내려왔는데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던 친구 이야기에 옆에 있던 아이들이 꺄르르 웃었다. 어깨에 힘을 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렇듯 일반인들에게 평양은 멀고도 경험하기 어려운 곳이다. 시골 소녀 또한 TV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했던 평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러던 중 평양에서 먼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가족을 대표해 외할머니와 시골 소녀가 나섰다. 그러나 들뜬 마음도 잠시 함흥에서 평양까지 기차 타고 가는 데 5일이 넘게 걸렸다. 함흥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300㎞ 조금 넘지만 전기가 잘 공급되지 않아 중간중간 멈췄다 가기를 무한 반복했다.

컴컴한 밤에 평양역에 내린 외할머니와 시골 소녀는 '궤도전차'를 타고 만경대구역에 있는 친척집을 어렵게 찾아갔다. 드디어 아파트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14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시골 소녀는 한숨부터 나는 자신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파트 승강기(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전기가 없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일주일 정도 그 집에 머무르면서 승강기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상상 속에 존재하던 평양에 왔는데 14층까지 걸어다니는 것쯤이야 하고 생각한 소녀는 다음날부터 열심히 평양 구경을 다녔다. 만경대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는 '만경대 고향집'(김일성 생가)이라고 생각한 외할머니와 시골 소녀는 만경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몇 시간을 주변에서 헤매다 결국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경대 주변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말에 친척집에 머물던 언니가 시골 소녀를 데리고 평양 구경에 나섰다. 그 언니 덕분에 지하철도 처음 타보게 되었다. 지하철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보는 시골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른 사람들을 슬쩍 곁눈질해보니 스스럼없이 타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여기서 티를 내면 촌놈이라고 비웃을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지금도 가끔 그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친척 언니와 지하철을 타고 놀이동산으로 놀러가면서 시골 소녀는 생각했다. 그동안 친구 이야기로만 듣던 놀이기구가 얼마나 무서울까? 나도 그 친구처럼 사투리로 욕해버리면 부끄럽겠지? 나는 용감하니까 욕하지 않고 잘 탈 수 있어 등등. 그러나 놀이동산에 도착해보니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놀이동산에도 전기가 부족해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한두 개 정도이고 그걸 타려면 몇 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야 했다. 결국 소녀는 또다시 포기하고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소녀는 평양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그동안 가졌던 평양에 대한 환상이 깨진 아쉬움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론 고향에 돌아가 어깨에 힘을 싣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성희 통신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