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물을 통해 인간을 드러내는 서양화가 남여주

입력 2020/05/14 06:01
수정 2020/06/02 03:59
[요요 미술기행-42] 남여주 작가는 '물'을 그린다. 나는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글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했다. 작가는 너무 명확하게 수십 년간 물을 그리지만,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에게 설명을 하려니 글이 어려워진다는 얘기이다. 수십 년간 투명하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물을 그렸으니 이제 다른 것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작가를 소개한 이는 작가에 대해 선하다고 평한다. 선한 이(善者)가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이다. 작품 또한 그렇다. '선한 겸손의 미'는 약함과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결에 이르는 과정이다.

남여주 작가는 그리고, 나는 쓴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건 쓰는 자의 몫이다. 말길을 먼저 튼 이의 방향에 따라 대화의 내용이 정해진다. 작품을 볼 줄 아는 것도 쓰는 자의 능력이다. 서양화가 남여주 작품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동양 철학과 미학 지식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온다.

노자(老子)의 미학사상은 '온전한 삶을 위한 미학'이 핵심이다. 『노자』에서 미(美)는 不爭(다투지 않음)을 특징으로 하는 선(善)과 더불어 드러난다. 진실한 삶의 양태로서의 善과 그 자태로서의 美, 인격미로 묘사된다.

예술가든 누구든 삶의 질곡에 맞부딪힌다. 5년여 전, 대학강의에 전념할까도 고민했으나 더 치열하게 작업을 하기로 방향을 정한 이후 18년간 함께한 작업실에서 해내는 작품은 캔버스 위로 흐르는 '물 선'만큼이나 유연해지면서 한결 전투적으로 바뀌고 있다.

남여주 작, Reflective 17050-2 (145.5×227.3), Acrylic, Resin, Bead on Canvas(2017)


'물 선'은 남여주 작품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물 선'은 봄날 서울 도심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내려다본 잉어 두 마리쯤이 얕은 수심의 수면 가까이 물살을 거스르며 정지된 채 햇빛이 일렁이는 그 '선'일 것이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추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이다.

'물 선'은 종이컵에 따른 물감을 드리핑하는 방법으로 표현된다. 회화 작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업한다. 캔버스를 세우든가 바닥에 눕히든가. '물 선'은 세워서 한 작업에 이은 눕혀서 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남여주는 투명한 자개장에 자신이 비쳐졌을 때 깨끗한 물이 고요히 정지해 있는 상태(明鏡之水)로 느꼈으며, 물이 고체화되어 수직으로 벽에 붙어있는 거울(mirror)을 보는 듯했다. 거울, 즉 '경(鏡)'은 자신의 얼굴 생김새뿐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모습까지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대학 입시를 앞둔 1년여 동안 아버지 몰래 화실을 다녔다. 미대를 간다 하니 집안 일(약국)을 도우라 한다. 타협점을 찾아야했다, 여대(이화여대)로 접점을 찾았다.

남여주는 교교히 흐르는 달빛에 잠긴 듯한 깊은 산속 옹달샘 수면 아래 달 항아리와 도자기, 바리때를 막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듯이 풍부한 입체적 공간감을 상상하면서 회화적 터치로 펼쳐낸다. 도자기는 유려한 자태가 선으로 중첩된 여성이며 세월의 흐름을 따라 살아온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남여주 작, Reflective 20032 (91.0×72.7cm), Acrylic, Resin, Bead on Canvas(2020)


약 35년여간 '물'이라는 물성에 대한 탐구는 매체로 유화에서 아크릴이 바뀐 거 외에는 변화가 없다. 2000년대 초까지도 패턴화되고 반복된 추상의 세계를 거닐었다. 2007년경부터 도자기와 바리때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물의 도식적 개념이었던 원형의 패턴(서클)은 '물 선'으로 상징화된다.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 구름 등 동양적 소재를 택해서이기도 하지만 색채의 중첩은 마치 물속을 들여다본 은근히 비쳐지는 '투영(透映)'이기도 하다. 물의 깊이에서 생기는 굴절은 평면화된다.

막상 작품의 오브제로 어울릴 것 같은 수련이나 옥잠화 같은 수생식물은 보이지 않는다. 도자기 곁으로는 엉뚱하게 고생대식물인 고사리가 놓이며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실체가 애매한 온갖 식물군들이 놓인다. 이질적 오브제의 배치,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옮겨놓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중심에 물이 있다.

아크릴에 크리스털 레진(resin), 비즈(beads)를 사용한다. 비즈는 빛의 거리와 위치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게 한다. 빛이 투영된 수심의 굴절을 표현한다. 표면상의 질감은 마치 자개를 세팅시키거나 건반 소리 공명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피아노용 도장인 듯하다. 레진이 나무 탁자의 표면에 굳으면 작업실 방문객은 마치 조금 전까지도 놓여 있던 주전자 주둥이에서 흘린 물로 착각한다. 형광등 빛 아래서는 더욱 그렇다.

남여주 작, Reflective 20051 (80.3×116.7cm), Acrylic, Resin, Bead on Canvas(2020)


물은 '정해진 형'(常形)이 없고, 그것을 담는 그릇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노자(老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면서, "물은 도(道)에 가깝다"(故幾於道)고 했다.

물의 고유한 성질은 '흐름'과 '순환'에서 찾을 수 있다. '순환'은 비·구름·수증기와 같은 공간적 형상의 변화상이지만 '흐름'은 지나가고 바뀌는 물의 시간적 변화상이다.

물은 조선 회화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 왔다. 동양고전에서 '물에 대한 관조'(觀水)는 대상과 자아가 서로 융합하는 감정전이(感情轉移)적인 관조였다. 덕에 비유(比德)하면 '관수(觀水)'와 '요수(樂水)'를 인격수양의 방법과 인생경계의 형상으로 삼았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흐르는 물을 관조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 선비가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다. 바위 위에서 턱을 괸 채 물을 바라보고 있다. 관수(觀水)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며, 물소리까지 듣는 관음(觀音)의 경지임을 보여준다.

남여주는 날이 저물며 비를 예고하는 바람, 부유하며 이미 부패가 시작된 꽃이파리, 언덕에 올라서면 닿을 듯 밤하늘의 흘러가는 구름과 노니는 판타지를 물을 들여다보면서 그린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 중심에 인간이 없으나 한편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하다.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도 물을 그렸다. 자신이 만든 연못 위 '일본식 다리'라고 부른 곳 위에 서서 내려다보며 물의 표면을 그렸다. 하늘, 나무, 물속의 모습이 이 표면 위에 그려졌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함을 느낀다.

[심정택 작가]

※참고자료 : 道家 審美意識의 基底 이해에 관한 試論(1) 『老子』를 중심으로(유병래, 동국대 동서사상연구소, 2009년), 물의 표정-미학의 과제로서의 물(민주식, 2001년), 《도덕경(道德經)》 제8장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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