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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車시트, 작업용에서 휴식용으로 진화

입력 2020.05.20 16:40:00 수정 2020.05.24 16: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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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車-143]

사진= 롤스로이스, 재규어, 벤틀리, 매경DB이미지 크게보기
사진= 롤스로이스, 재규어, 벤틀리, 매경DB "우탕탕탕, 덜덜덜덜."

낡은 경운기 소리와 함께 몸이 들썩였다. 5분쯤 지났을까.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시속 20㎞로 천천히 차가 움직였지만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는 매타작을 당한 듯 얼얼해졌다.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얻어맞던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20분 뒤 차에서 내리자 꼬리뼈가 아렸다.

8년 전 일본 도쿄에서 1924년형 벤틀리 3ℓ카 뒷좌석에 탔을 때만큼 시트의 중요성을 체감한 적은 없었다. 평생에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클래식 명차를 타본다는 기쁨도 잠시, 뒷좌석에 앉을 때부터 고역이었다.

시트는 나무 의자에 천을 댄 것에 불과했고, 앉는 위치도 낮아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을 때처럼 무릎을 쭉 펴야 했다. 동승 체험을 끝내고 버스에 탑승하자 올 때는 비좁고 불편했던 좌석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동차 의자인 시트는 2만개가 넘는 차 부품 중 신체와 가장 오랜 시간 접촉하는 부품이다. 시트는 운전자와 탑승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원 벤치가 아니다.

이 중 운전석 시트는 휴식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강한 뒷좌석 시트와 달리 단순히 앉아 있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앉은 자세에서 '일'을 하는 구조물이다.

따라서 안전하면서도 편해야 한다. 시트가 불편하면 운전이 불안해지고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트를 만들 때는 가정용 소파나 의자 등 가구와 달리 승차감과 안전성을 모두 감안해야 하고 첨단 소재와 기술을 총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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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3ℓ카 /사진=벤틀리 ◆가구에서 과학으로

자동차 시트에 인체공학이 적용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이다. 자동차가 등장한 뒤 100여 년 지난 뒤에야 가구가 아닌 과학이 된 셈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해 가죽을 사용하거나 강렬한 색채를 적용하기도 했지만 가정용 의자 또는 소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운전석도 철제 의자에 가죽이나 천을 씌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이 지나면서 시트 제작에 과학이 적용됐다. 시트를 디자인할 때 인체공학 측면은 물론 표피 재질의 질감이나 색상, 패턴, 재봉선, 펀칭 등도 함께 감안했다. 재봉선도 보기 좋게 하려고 넣은 게 아니었다. 시트의 생산성과 앉았을 때의 느낌, 내구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시트 제작에는 제약도 많다. 일반적으로 소파는 쾌적한 실내 공간에 영향을 주기에 안락함과 푹신함을 추구한다. '휴식'의 개념을 적용한다.

반면 운전석 시트는 비교적 긴 시간 고정된 자세로 앉아 있는 '작업'의 개념을 반영한다. 운전자 신체를 알맞은 위치에서 지지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시트가 소파처럼 푹신하다면 자세가 흐트러지기 쉽고 체중을 고르게 분산하기 어려워 피로가 빨리 찾아온다.

아울러 움직이는 차량 내에서 장시간 사용, 여름철 고온에도 견디는 내구성, 승객에게 편안한 자세를 제공하기 위한 각종 지지 기구, 충돌 등과 같은 사고에 대비한 안전 설계와 안전법규 만족, 승강성에 유리한 형상 등 많은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재료가 고급스럽고 색감이 뛰어나다고 좋은 시트라 단정할 수 없다.

아울러 시트 생산에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자동차 생산에 자동차 설비와 스마트팩토리 개념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시트에서는 예외다. 전체 공정의 95%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인체공학을 적용한 시트 /사진=제네시스, 르노삼성, 토요타, 시트로엥이미지 크게보기
인체공학을 적용한 시트 /사진=제네시스, 르노삼성, 토요타, 시트로엥 ◆종류도 성격도 각양각색

시트 종류는 크게 버킷(bucket)형, 벤치(bench)형, 헤드레스트(headrest)가 분리된 로백(low back)형, 일체로 만들어진 하이백(high back)형으로 분류한다.

1970년대까지는 긴 모양의 벤치형 의자를 설치한 차들이 많았다. 앞좌석은 전반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시트 등받이(seat back)에 헤드레스트 부착 여부에 따라 헤드레스트 분리형과 헤드레스트 일체형으로 구분된다.

분리형은 실내에 개방감을 주고 뒷좌석 탑승자에게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기에 세단에 많이 사용된다. 외관도 고급스럽다.

일체형 시트는 주로 소형차에 사용됐다. 뒷좌석 비중이 높지 않은 스포츠카와 저가의 승용 밴에도 많이 장착됐다. 시트 등받이가 높아 실내 개방감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주행 시 착좌감이 좋고 후방 추돌사고 때 운전자 경추(목뼈)를 보호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경쾌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줘 패션성도 갖췄다.

뒷좌석은 시트 쿠션 두께에 따라 안락성이 결정된다. 스포티한 성격의 차량은 앞좌석을 중시하기 때문에 뒷좌석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긴다. 쿠션 두께가 얇고 덩달아 안락함도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세단은 고급 승용차로 갈수록 뒷좌석 거주성 확보와 안락성을 중요하게 여겨 쿠션이 두꺼워진다. 두께가 두껍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껍게 할수록 안락감은 좋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실내 공간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 팬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제네시스 G90 등 고급차 뒷좌석은 항공기 1등석에 버금가는 기능을 갖췄다. 쇼퍼드리븐(핸들은 운전사에게 맡기고 오너는 뒷좌석에 앉도록 한 차) 성향을 지녔기에 소파처럼 휴식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신체 접촉이 가장 많은 부위에는 고급 재료를 사용한다. 대체로 직물이나 PVC, 천연가죽 등을 쓴다. 천연가죽을 사용할 때에는 소가죽에서 부드러운 표면만을 골라서 써야 하므로 선별작업을 거쳐야 한다.

신체가 직접 접촉하는 부위에는 천연가죽을 쓰고, 나머지 부분은 고급 합성가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절기에 섭씨 80도 이상 올라가는 밀폐된 차 안에서 물리적 성질이 변하지 않고 자외선에도 손상되지 않으며 내구성이 강한 표피 재료를 쓴다.

메르세데스-벤츠 EQS /사진=벤츠이미지 크게보기
메르세데스-벤츠 EQS /사진=벤츠 ◆과학에 감성·웰빙을 입히다

시트는 첨단 소재와 기술 덕분에 진화하고 있다. 감성과 웰빙 추구도 시트 진화에 한몫하고 있다. 감성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차 정숙성을 결정하는 NVH(소음·진동) 기술도 시트에 적용되고 있다.

시트는 차에서 발생하는 각종 진동을 탑승자에게 최종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시트의 진동 저감 기술은 감성 품질과 직결된다.

감성과 웰빙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기능성보다는 심리적 만족감에 초점을 맞춘 안마 시트도 등장했다. 독립적으로 판매되는 안마 의자보다 효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항공기 1등석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준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앞뒤 좌석에는 온돌 마사지 원리를 이용해 시트 내부에 장착된 에어 체임버가 열과 함께 허리를 마사지해주는 컴포트 시트가 장착됐다.

렉서스 LS는 항공기 1등석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 오토만 시트를 채택했다. 시트는 22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다. 리클라이닝 각도는 48도로 확장할 수 있다.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민 뒤 다리 받침대를 올리면 키가 큰 승객도 다리를 뻗고 휴식할 수 있다.

링컨 MKS는 럭셔리 항공기에 사용되는 스코틀랜드 가죽 전문기업 '브리지 오브 위어'의 최고급 소가죽을 사용했다. 시트 쿠션은 콩 추출물을 주재료로 만들어졌다.

마세라티는 세계적인 패션 명품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agildo Zegna)와 협업해 100% 천연 실크 소재를 사용한 시트를 르반떼, 콰트로포르테 등에 사용했다.

제네시스 G90은 이탈리아 다이나미카(Dinamica)의 고급 스웨이드로 시트 컬러와 맞춰 제작된 후석 목베개로 편안함을 더 향상했다.

미니밴인 토요타 시에나는 운전석 뒤에 탄 탑승자들이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오토만 시트를 장착했다. 쉐보레 익스플로러밴,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등 프리미엄 밴도 '달리는 호텔'이라는 별명에 맞게 항공기 1등석 부럽지 않은 시트를 갖췄다.

닛산은 무중력 상태와 같이 근육과 척추가 받는 압력이 최소화될 때 운전자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을 파악하고 저중력 시트를 개발해 알티마에 처음 적용했다.

자동차 업계의 화두인 자율주행도 시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자동차에서는 운전석 개념이 사라져 실내 전체가 거실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운전석이 필요없거나 있더라도 형태만 갖추기에 시트 전체는 거실 소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작업이 아닌 휴식을 위해 존재한다.

미래 콘셉트 시트 /사진=현대트랜시스, 현대차그룹이미지 크게보기
미래 콘셉트 시트 /사진=현대트랜시스,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시트의 요람인 현대트랜시스 시트연구소는 △진동 체감 스피커를 갖춘 터처블 뮤직 시트 △뒷좌석 탑승자의 편의성을 향상시켜주는 동승석 다기능 모듈 △스마트폰으로 동승석 시트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원격제어 워크인 시스템 △센서를 통해 온도·습도를 측정한 뒤 시트 공조를 제어하는 능동형 온도 제어 시스템 등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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