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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바로 뜯는 작은 습관

입력 2020.05.21 15:01:00 수정 2020.05.24 16: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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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37]

"택배 온 거 뜯어봐."

"응. 뭔지 알아."

"응. 그러니까 뜯어보라고."

"아니,뭔지 안다니까."

"아니, 그런데 왜 안 뜯는 거야."

"뭔지 아니까~."

이런 무한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오가는 게 과연 우리집 뿐일까.

어느 날 남편이 며칠째 문 앞에 뜯지 않은 채 놓여 있는 택배상자를 보며 말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던 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왜 택배를 뜯지 않는지 궁금해서 한 말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택배 속 물건만큼이나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혹시 남편이 택배 속 물건의 정체를 궁금해했던 건가? 그럼 본인이 열어보면 될 것을!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뜯지 않는 택배 상자는 조금씩 쌓여 산이 되어 간다. 그러다 보면 더욱 뜯기가 싫어진다.

물건을 구입할 때 설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우리집에 오자마자 나에게 찬밥 취급을 당하는 택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지금 쓸 건 아니니까,라며 방 한구석으로 치워놓는다. 남편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그런데 택배가 쌓여 있는 꼴을 멍하니 보자니 예전에 티비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홈쇼핑에 중독돼 발 디딜틈 없이 방 안 곳곳에 물건이 가득 차 있던 사람들,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이 한가득인데 또 티비를 보며 물건을 주문하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리 전문가뿐 아니라 심리상담사까지 등장하던 모습이 말이다.

명색이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인데, 미니멀라이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맥시멀리스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일순간 반성을 하게 됐다. 그래, 이제 포장을 뜯어야겠어(절대 남편의 잔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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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쌓아놓은 택배의 정체는 사치품이 아니다. 집을 수리하거나 보수하기 위한 자재들과 떨어져 가는 소모품을 새로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얼마 전 이사한 집은 이전 집보다 오래되어서 그런지 손을 볼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찾아낼 때마다 바로바로 방수 테이프나 실리콘 총같이 필요한 물건을 주문했다. 요즘은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이 일상화되다 보니 잠들기 전 주문한 물건이 깨기도 전에 문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왜 자고 일어나면 의욕이 사라지는지, 내가 주문한 그 물건의 포장을 뜯으면 당장 일(집 보수)를 해야 한다는 게 싫고 부담스러웠다. 그래, 고치고 싶을 때 뜯자. 그러나 이윽고 밤이 되면 새로운 것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 뿐 주문해놓은 물건을 뜯어 이미 발견한 하자를 보수하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일주일 안에 80% 버리는 기술' 저자 후데코는 물건을 늘리지 않으려면 '물건을 사고 나서 48시간 안에 사용할 것'이라는 원칙을 정해두라고 조언했다. 아무리 사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해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게 되지만, 필요하면 반드시, 곧! 사용하라고 말이다. 사용하는 장면이 확실히 떠오를 때 사고, 사고 나서 물건을 방치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면 구매에 신중해진다. 옳은 말이다.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기지 않은 나를 반성하며, (한때는 실천에 옮긴 적 있던) '48시간 안에 사용하기'라는 원칙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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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포장을 뜯고 나면 묘하게도 사용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저자이자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아예 정리의 팁 중 하나로 '포장 봉인 실(seal)과 패키지 필름을 제거하는 것'을 들었다. 수납 케이스에 붙어 있는 스티커부터 시작해 옷 태그 등 사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각종 포장재들을 즉시 제거하면 집 안의 번잡스러운 느낌이 사라진다고 한다. 일례로 수납 케이스에 글씨가 많은 경우에는 문을 열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글자가 무의식 중에 정보로 처리돼 머릿속이 어수선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수납공간 내부에 불필요한 정보가 가득 차면 실내가 어수선해진다고 곤도는 주장한다. 상품을 포장하고 있는 봉인을 떼어 버리는 것은 물건을 '우리집 것'으로 맞아준다는 의미에서도 필수적이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옷에 붙어 있는 태그를 옷을 입기 전까지 쉽사리 떼지 못하는데, 보통은 그 태그 안에 수선용 옷감이나 여분 단추가 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아두면 경험상 어느 옷의 여분 단추(옷감)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 어차피 입으려면 떼어내야 하는데도 떼기가 망설여진다. 곤도는 옷감이나 여분 단추는 옷 안쪽 안 보이는 곳에 꿰매 두라고 했다. 아, 난 왜 이 생각을 못했지, 하다가도 그래, 그 작업이 귀찮아서 또 태그를 떼지 못한 거로구나 하며 반성한다.

포장을 바로 뜯는 작은 습관 하나가 하루의 일상을 조금 더 생기 있게 만들어주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워줄 수 있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다소 귀찮지만 이러한 습관은 꼭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고 있지 않더라도 실천할 수 있을 만한 일상의 '꿀팁'일지 모른다. 남편의 잔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덤이다. 자, 오늘 오는 택배 친구들아. 오늘은 꼭 문 앞에서 뜯어줄게. 우리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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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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