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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선정한 名강사가 20년째 첫 강의

입력 2020.05.25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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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농업대학 개강 첫 강의는 늘 김광호 원장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한국 명강사 99인`
"인순이 `거위의 꿈`처럼 간절함 갖고 살아야"
[정혁훈 기자의 벤처농업대학 체험記-2] 한국벤처농업대학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0년 국민보고대회를 준비하면서였습니다. 매년 3월 매일경제신문 창간기념 행사로 개최되는 국민보고대회의 그해 발표 주제가 바로 농업이었죠. 당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던 저는 편집국장 지시로 후배 기자 5명과 함께 팀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3개월간 현업에서 빠져나와 작업한 끝에 나온 보고서가 바로 '아그리젠토 코리아-첨단농업 부국의 길'이었습니다. 농업계에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보고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보고서가 농업전문기자의 길을 선택하는 데 씨앗이 됐습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5월 16일 오후 늦게 20기 입학식을 가졌다. 졸업식을 마친 가운데 의자를 재배치하는 등 입학식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정혁훈기자이미지 크게보기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5월 16일 오후 늦게 20기 입학식을 가졌다. 졸업식을 마친 가운데 의자를 재배치하는 등 입학식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정혁훈기자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맡고 있던 민승규 현 한경대 석좌교수가 아그리젠토 프로젝트팀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벤처농업대학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런 대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대학을 민간연구소 박사(민승규)가 설립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는데, 10년이 지나 제가 입학을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기 졸업식이 무사히 끝나고 곧바로 입학식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이때 약간의 혼선이 발생했습니다. 입학식을 겸해 열리는 첫 강의를 위해서는 빔 프로젝트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된 것입니다. 몇 차례 의견 교환이 있었지만 민 교수께서 단호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이태원발 감염 사태로 걱정이 많아 입학식 개최에도 반대 의견이 있을 정도인데 실내에서 진행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평소 휴게공간으로 쓰이던 곳에서 입학식을 열기로 하고 의자 배치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한국벤처농업대학 20기 입학식에서 민승규 설립자 겸 운영자(한경대 석좌교수)가 신입생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이미지 크게보기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한국벤처농업대학 20기 입학식에서 민승규 설립자 겸 운영자(한경대 석좌교수)가 신입생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 이때쯤 이날의 히어로가 연단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 원장입니다. 개강 첫 강의를 맡은 분입니다. 재밌는 것은 벤처농업대학 개강 첫날 첫 강의는 20년째 김 원장 몫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0년째 입학식날 첫 강의를 똑같은 사람이 하고 있는 겁니다. 참 대단합니다.

도대체 김 원장님 강의가 어떻길래 20년간 첫 강의를 독차지한 것일까요? 의문은 곧바로 풀렸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기침소리 한 번 나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입학생 모두가 가슴 한쪽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걸 느낄 정도였습니다. 강의 내용을 글로 옮겨서는 그 맛을 살릴 수 없지만 그래도 몇 대목은 전해야겠습니다.

한국벤처농업대학 입학식날 첫 강의를 맡은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 원장. 그는 지금까지 20년째 개강 첫날 첫 강의를 맡아오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이미지 크게보기
한국벤처농업대학 입학식날 첫 강의를 맡은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 원장. 그는 지금까지 20년째 개강 첫날 첫 강의를 맡아오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 김 원장은 코로나19로 비롯된 위기는 사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고, 불황에 거상(巨商)이 난다는 겁니다. 외환위기 이후 부(富)의 질서가 재편되고, 금융위기 이후 새로 강한 기업이 태어났듯이 코로나 이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촉각을 예민하게 하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부를 일굴 기회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날 그의 강연 제목은 바로 '비상(非常)이다. 비상(飛上)하자'였습니다.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나만의 전략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자는 것입니다.

김 원장은 그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 먼저 얘기했습니다. 명강사로서 입지를 유지하고 나아가 더 명망 있는 강사가 되기 위한 전략 말입니다. 그건 바로 최고의 내용을, 가장 먼저, 유일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Best First Only One’ 전략입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킬러 콘텐츠를 만들라'는 사명입니다. 경북 영주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미국 아마존에서 국내보다 5배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베스트 퍼스트 온리 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위기에서 기회를 만들어낸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잘 다니던 보험사에서 반강제적으로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6개월간의 실업급여도 받았습니다. 지방대학 농학과를 나온 그는 직장생활을 곧잘 했지만 외환위기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 글쓰기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냥 글쓰기가 아닙니다. 하루에 A4지 한 장씩 매일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500일간 500장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고독한 시간에 자기와의 승부를 벌이면서 그의 생각은 세련되게 정리돼 갔고 그의 글쓰기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습니다.

그런 노력이 그를 삼성그룹 최고 인기강사의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주관한 '분야별 명강사 99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매일경제신문에 '골프와 경영' 칼럼을 3년간 연재한 것도 그런 노력 덕분입니다. 그는 지금도 연간 200회 정도 강연합니다. 주로 골프와 경영, 마케팅을 연결함으로써 직장인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직원들 연수를 위해 모시는 강사 중 최고인 S등급 강사로 이름이 높습니다. 강연료 또한 최고 수준임은 당연하겠죠?

이렇게 잘나가는 그에게 요즘 다시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그의 주무대인 오프라인 강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사실상 그의 주 수입원인 강연료가 지난 2월부터는 '제로'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을 비대면 온라인 강의 진출의 절호의 기회로 보고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500일간 A4지 500장의 글쓰기를 했듯이 이번에는 동영상 콘텐츠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동시에 '김광호의 그늘집'이라는 브랜드로 유튜브 동영상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68세인 그는 앞으로 10년간 77세에 이르기까지 1001개의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1000일 야화보다 하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목표입니다. 그는 이날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외쳤습니다.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 원장이 벤처농업대학 개강 첫날 첫 강의를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이미지 크게보기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 원장이 벤처농업대학 개강 첫날 첫 강의를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혁훈기자 강연 말미에 그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인순이의 동영상을 틀었습니다.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중략)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호소력 짙은 인순이의 노래가 산중에 울려퍼지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이 꽤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원장은 외쳤습니다. 벤처농업대학은 빌 게이츠가 창업의 꿈을 키우던 차고와 같은 곳이라고.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단순한 농업 지식이 아니라 간절함과 절실함을 갖고 가라고. 벤처농업대는 분명히 여러분들을 통해 혁신의 요람, 창조의 메카가 돼야 한다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습니다.

[금산=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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