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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지 '우리는 모른다'는 그 사실을 알 뿐이다.

입력 2020.06.25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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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아포리즘-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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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어느 날 문득 '인간에게 미지(未知)의 세계가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이집트 사막 여행길에 '서울 전역 1만5천원' 대리 운전 문자가 뜨는 걸 보면서 이제 인간에게 미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오지기행 다큐에 등장하는 문신 투성이 원주민도 카메라 앞에서 독화살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카메라가 꺼지면 스마트폰부터 찾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이제 인간에게 미지의 땅은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깨졌다. 인간은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이룬 듯했지만 착각이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정복했을 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여전히 무력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뿐이었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창궐 앞에서 인간의 능력은 미약할 뿐이었다.

스마트폰만 켜면 전 세계 뉴스와 주식시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전 세계의 골목골목을 안내 받을 수 있고,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며, 몇 번의 터치로 모든 재화를 구할 수 있지만 그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문명은 결코 우리가 믿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았다.

우리는 몇 달째 눈에 보이지 않는 작디 작은 단백질 덩어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가 건설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걸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다.

타인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도, 기도를 하러 성당에 가는 것도, 공연장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유희를 즐기는 것도, 마트에 가는 것도, 식당에 가는 것도, 요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러 가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통제를 받는 일이 됐다.

인류가 그토록 오랜 투쟁과 공부를 통해 완성해 낸 모든 것들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 여행의 자유, 접촉의 자유는 이미 무너졌고, 개인정보 보호가 인권의 시작이라는 주장은 한가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갈지, 어떤 피해를 더 입힐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번사태로 인류의 오만함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비오는 날 산사에서 큰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우문에 '우리가 지은 업((業)의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인간이 지구에 대해, 그곳에 깃들어 사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 생각하고 행했던 만행들이 업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말이었다.

스님은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라는 불경 구절을 들려줬다. 하늘과 땅은 나와 그 뿌리가 같고, 온갖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그 구절이 왜 그렇게 마음에 다가왔는지. 그렇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만물과 동등한 존재였을 뿐, 특별한 발언권을 가진 유별난 종은 아니었다. 그런 우리가 지구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

긴 차담을 마치고 산사를 내려오는 길. 어느 새 비가 그치고 막 세수를 한 듯한 맑은 하늘이 구름사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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