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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디지털 디톡스를?

입력 2020.07.16 15:01:00 수정 2020.07.16 17: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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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41]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차지 않은 바람과 적당한 기온에 모두 들뜨는, 그런 하루였다. 나 역시 집 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길을 나섰다. 나만큼 들뜬 많은 이들이 짧은 계절이 주는 선물 같은 하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듯한 젊은 부부가 유독 눈에 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 이제 갓 100일이 지난 듯한 아기도 함께 마실을 나온 모양이다. 엄마는 유모차를 밀고, 아빠는 엄마보다 조금 앞서 걷는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기분이 좋은 아기가 옆에 있는 아빠를 만지겠다고 손을 뻗는다. 고사리 같기도 하고 단풍잎 같기도 한 손이 유모차 밖으로 쑥 나와서는 열심히 아빠의 손을 찾는다.

하지만 아빠는 정작 스마트폰을 보느라 그 모습을 놓친다. 아빠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오늘 막 업데이트된 웹툰일지도, 아직 보지 못한 오늘의 주요 뉴스일 수도. 아니면 친구들의 일상과 하소연, 혹은 자랑이 가득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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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면에 무엇이 들었든, 아빠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파닥거리는 아이의 손짓만큼 감동적이고 흥미로울까. 몇 번이나 유모차 밖으로 나오던 작은 손짓은 이내 지친 듯 굼떠지더니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면서도 카카오톡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던 엄마는 자기 앞에 턱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마 산후조리원 동기들, 아니면 인생 선배들과 육아에 대해 진지한 상담을 털어놓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이는 그 사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덜컹대는 유모차 속에서 작은 사고를 경험한다.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 한 엄마는 잠시 놀라더니 다시 메신저 창으로 시선을 향한다.

지하철 안에서는 또 다른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 오랜만에 엄마는 아이에게는 '이모'라고 불리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쐬러 가는 길인 듯하다.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자기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운 아이가 엄마의 옷가지를 잡는다. 놀아달라고, 나랑도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엄마는 "잠깐만"이라고 말하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윽고 터치 몇 번으로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킨 뒤 다시 아이에게 쥐어준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들은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의 옷을 잡던 아이의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뭔가 닮은 느낌의 세 가지 장면이 내 앞에 스치자 나는 스마트폰이 없던 나의 유년 시절이 새삼 고마워졌다. 그 덕분에 내가 사랑과 관심이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0년 전에 비해 세상은 더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작은 화면 때문에 놓친 사소한 감동의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에는 없지만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을 젊은 내 엄마 아빠에게도 사무치게 고마웠다. 그들이 나와 눈과 볼을 맞댄 시간만큼 내 마음의 키가 자랐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이 잠시 세상에서 관심을 거두고 '나'라는 작은 생명체에 온전히 관심을 기울였던 순간순간마다 그들의 눈빛으로 만들어진 나의 세계가 한없이 커졌을 테지.

사실 이 글은 수년 전, 결혼을 하지 않은 내가 일기장에 적어뒀던 글이다. 이 글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언젠가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도 그런 세계를 만들어 주고 싶다. 빛을 내는 네모나고 작은 물체보다 자기 자신이 훨씬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오래전 내가 끄적끄적 적어뒀던 글을 찾아낸 계기는 딸의 한마디였다. "엄마, 엄마는 왜 나랑 밖에서만 놀아줘?"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 한창 바쁘던 와중이라 "엄마가 우리 딸들 옷 입히고 밥 먹이느라 그랬지"라고 대답했지만 딸의 답은 의외였다. "엄마는 집에서는 자꾸 스마트폰으로 일하잖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하는 거야?" 그제서야 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종종거리는 아침에도 내 손에 찰떡같이 붙어있던 스마트폰에 내 딸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밥을 먹이면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아이 옷을 입히며 SNS를 확인하고 가방을 싸며 중간중간 뉴스 속보를 읽겠다고 놓지 않고 있던 그 네모난 물건 말이다. 내 눈앞에 있는 소중한 두 명의 아이를 외면한 채 세상으로의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 내 딸은 내가 순간순간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고 나서야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을까. 차라리 정말 일할 때였다면 덜 미안했을 텐데, 내가 하고 있었던 건 너무나도 사소한 딴짓이었다. 곧 어린이집에 가면서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딸에게 집중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워킹맘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내 아들이 눈앞에 있는데 휴대폰으로 우리 아기 동영상을 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기들이지만 육아는 힘들고, 잠깐이라도 도피하고 싶지만 갈 곳은 없고, 그러다 보면 잠시 휴대폰에 빠져들고 싶은 그 심정을 꼭 나와 내 친구만 느껴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스마트폰을 만지작 대고 있는 내 손을 쳐다봤다. 내친 김에 SNS 앱을 쓱 지운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만 훑어보고 있었던지라, 내가 이 앱을 지운다고 해도 전혀 알아챌 사람도 없다. 이렇게 소통 없이 다른 이의 일상을 훔쳐보며 정작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을 흘려가며 살았구나. 지금이라도 디지털 미니멀라이프에 한 걸음 다가서서 다행이라고 억지로 위안해본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비워가다 보면 더 나와 우리 가족의 하루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말이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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