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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입력 2020.07.31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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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 /사진=wikipedia이미지 크게보기
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 /사진=wikipedia [효효아키텍트-47] 1986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ohm, 1920~)의 아버지 도미니쿠스 뵘(Dominikus Bohm, 1880~1955)은 독일 전역에 수많은 로마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를 설계했다. 고트프리트 뵘의 할아버지와 아들까지 4대에 걸친 건축가 집안이다.

대성당처럼 중요한 건물의 웅장한 정문을 '포털(portal)'이라고 부른다. 성당의 포털은 단순히 벽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도미니쿠스 뵘이 설계한 노이 울름(Neu-Ulm)의 성 요한 세례자성당(1927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울름 성채에서 나온 돌을 사용해 세워졌다. 이 성당의 긴 정면에는 높은 아치형 포르티코(Portico·列柱廊) 3개가 겹쳐 있다. 붉은 벽돌 띠가 포르티코의 아치 위를 지나게 해 아치 형태를 더욱 뚜렷하게 했다. 성당에 들어가는 문 5개 중 3개는 높은 아치로 된 포르티코 안에 있다. 건축가 김광현은 '로마네스크적 포털을 근대적으로 번안한 탁월한 설계'라고 평가한다.

전통적인 바실리카 평면에 기초를 두면서도 표현은 독창적이다. 측랑의 외벽과 내부 기둥이 모두 제단을 향해 틀어져 있어 방향성이 고조된다. 육중한 내부 열주에 비해 상대적인 중량감을 소멸시킨, 마치 접어 구긴 종이와 같은 천장 볼트(Vault, 벽돌·돌 혹은 콘크리트의 연속 아치로 견물을 싸는 자립형 구조)가 디자인의 요체다. 도미니쿠스 뵘은 독창적인 볼트 시공을 위해 그가 직접 고안한 기술을 사용했다. 진한 모르타르를 사용해 라비츠 타입(Rabitz type, 카를 라비츠가 고안한 철사 그물로 보강한 석고벽)의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바닥에서 천장까지 커브진 볼트를 만들었는데 당시 이 건물이 건축 토론의 주제가 됐다.

도미니쿠스 뵘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공과대학에서 수학할 때, 테오도어 피셔(Theodor Vischer, 1862~1938)는 그에게 재료의 적절한 사용과 건설 방식의 감각을 계발시켰다. 피셔는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에 비견되는 건축 교육자이자 도시 계획가로서 독일공작연맹(Werkbund) 창설 멤버로 제1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08년, 도미니쿠스 뵘은 오펜바흐(Offenbach)의 건축 미술학교에서 선생이 된다. 이후 18년 동안 이 학교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이곳에서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가 2년 동안 뵘에게 배우며 현상 설계에 협동 작품을 내기도 했다. 오펜바흐에서 뵘은 그의 학생인 마틴 베버(Martin Weber, 1890~1941)에 의해 가톨릭 전례 운동(Liturgical Movement)에 접근하게 되고 전례의 새로운 인식에 대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버는 제대 위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가톨릭 성당 건축에 최초로 제대를 회중석 가운데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도미니쿠스 뵘은 쾰른 공작학교의 교회미술과 과장이 되어 1934년 나치에 의해 해임될 때까지, 그리고 2차 대전후 다시 교수로 재직했다(1947~1953). 2차 대전 후 1950년대 교회 건축의 두 번째 부흥기에 뵘에게 많은 재건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교회 30개를 포함한 70여 개 실행 작품과 80여 개 계획 작품을 남기고 195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업은 아들 고트프리트 뵘과 손자에게 계승되고 있다. 고트프리트의 네 아들 중 3명(Stephan 1950~, Peter 1954~, Paul 1959~)이 건축을 한다.

뵘의 영향은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대성당의 국제 현상설계(1953·미실행)와 작품집, 제자, 동료들을 통해 국제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유리공예가, 제의 디자이너, 작곡가, 문필가로 천부적인 재능의 '총체적 예술가'였다.

도미니쿠스 뵘과 루돌프 슈바르츠는 한국 교회 건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의 독일인 신부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1904~1978)는 20년간(1958~1978) 한국 내 126곳의 성당 건축을 포함해 가톨릭 건물 188곳을 설계함으로써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현대 교회 건축의 혁신적인 개념과 다양한 실험을 국내에 소개했다. 슈미트의 작품에서는 도미니쿠스 뵘과 슈바르츠의 아이디어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고트프리트 뵘은 1946년 뮌헨기술대를 졸업하고, 근교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조각 공부를 마쳤다. 이때 배운 미술적 소양은 이후 뵘이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뵘은 조각 공부를 하며 익힌 점토 모형 제작 기술을 건물 디자인 과정에 적용하고 통합했다.

1947년부터 아버지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루돌프 슈바르츠의 지도하에 쾰른재건협회(Society for the Reconstruction of Cologne)에서도 재직했다. 1955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독일 전역에서 교회, 박물관, 사무실, 개인주택, 아파트, 주민센터 등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고트프리트 뵘은 과거와 현재, 이상적 세계와 현실 세계, 건물과 도시 환경 사이의 연결(connections)을 창조해내는 건축가로 정의된다. 그는 건물의 색감, 형태, 자재를 대지와 주변 환경 간 관계 속에서 구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초기 작품은 주조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삼았으나,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점점 철강과 유리를 더 활용했다.

뵘은 기능과 디자인의 독자성, 순수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에 조용히 반기를 든 건축가다. 그에게 건축은 '연결 고리 만들기'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관심을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 건축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된다.

벤스베르크 시청(City Hall Bensberg, 1964~1969)은 근처에 있는 바로크식의 옛 성채에 분위기를 맞춰 고전적인 형상의 중앙 탑과 중앙 광장을 둘러싸는 사무동의 날개들이 조화를 이루는 형식을 취했다. 마치 시민의 광장이면서 동시에 성당 같기도 하고 성채 같기도 한 독일 도시의 고전적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시청 사무공간이 시민들에게 스며들듯이 자리하고 있다.

네피게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72) /사진=flickr이미지 크게보기
네피게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72) /사진=flickr 네피게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1972)는 포스트모던 표현주의의 독특한 예로 손꼽히며, 교회는 비탈을 계단 형태로 변형해 순례자들이 행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실내 조형에서는 바우하우스의 장식을 배제한 엄격함과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콘크리트 조각이 인상적이다.

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울름 시내 중심가에 있다. 유리로 된 피라미드 형태로 아랫부분은 가로 29m, 세로 29m이며 전체 높이는 36m다. 건물의 전체 면적은 약 4600㎡다. 지역주민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한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교회 건축가 알빈 슈미트 신부의 성당 건축 유형과 디자인 원천에 관한 연구: 도미니쿠스 뵘과 루돌프 슈바르츠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한국건축역사학회, 2007년), 건축가 김광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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