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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사랑받는 골퍼가 됐나

입력 2020.11.14 06:01:00 수정 2020.11.14 14: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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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오딧세이-61] 한 고교 선배와 올 들어 자주 동반 골프를 한다.

그와 함께 하는 골프가 기분 좋다. 대부분 내가 초청한 케이스인데 한 번도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함께 하기로 한 멤버가 펑크를 내 그가 대신 자리를 메워준 경우도 많다.

사정을 얘기하면 흔쾌히 응했고 자연스레 그와 골프를 치는 횟수가 늘었다. 올 들어 함께 골프를 친 횟수가 많은 동반자 중 한 명이다.

"후배가 불러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 선배나 동기들보다 후배가 편안하게 초청한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좀 특별하다고 생각해. 나에 대한 애정과 배려 없이는 생각하기 힘든 액션 아닌가."

지난주 홍천 소재 비콘힐스CC에서 골프 도중 고맙다는 말을 전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날도 이른 시간 부킹부터 해놓고 멤버를 모았는데 선배 덕분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몽골에서 골프장 딸린 리조트를 운영하고 국내에서도 의료 네트워크 사업으로 바쁠 텐데 여태껏 이유 불문하고 불원천리 달려와 준 선배가 고마울 뿐이다. 초청해 줘서 영광이라며 간혹 점심까지 해결해주니 동반자에게도 물개박수를 받는다.

그를 보면 사랑 받는 골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구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골프 멤버 구성이 점점 힘들어진다. 시간, 경제, 건강, 매너 등 문제로 멤버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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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골퍼의 첫 번째 조건은 선배처럼 초청에 쿨하게 응하는 사람이다.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하루 전날 양해를 구했음에도 "너가 부르는데 당연히 가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대타로 들어와도 다른 동반자와 잘 어울리면 그날 멤버 구성은 성공이라는 느낌이다.

내가 원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달려와 주는 연인 같은 존재 아닌가. 후배인 나의 고교 동기와 옛 직장 동료 등으로 선배의 동반자 폭도 넓어진다. 초청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모르는 사람과도 원만하게 어울리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하리라.

운전으로 기여하는 사람도 사랑을 받는다. 필자는 골프 실력도 매너도 특별하지가 않다. 골프 상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 멤버 구성에 별 어려움이 없는 건 운전 덕분이리라.

집이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데다 낮에 아내가 차를 사용할 일이 없고 골프백 4개가 트렁크에 쉽게 들어간다. 운전을 좋아하고 차 타고 가면서 얘기하다 보면 오붓한 카페가 따로 없다.

20분 정도 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먼저 카풀을 제의하고 새벽같이 집까지 픽업하러 간다. 언제부턴가 당연히 내가 운전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골프 게임에 들어가면 운전자 핸디캡을 배려해야 한다면서 동반자들이 스킨스 게임 비용을 줄여주기도 한다. 덤으로 얻는 혜택이다.

운전을 하지 않아 편안하게 술을 마신다면서 동반자들이 골프 뒤풀이에서 다시 고마워한다. 무사히 집에 데려다 주면 내가 뿌듯하다.

오롯이 하루의 안전을 맡긴 그들에게 오히려 감사한다. 귀가 후 홀로 마시는 맥주 한잔이 감로수다. 하루 피로가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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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배려를 가진 골퍼도 사랑을 받는다. 주로 간식을 준비한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골프 비용이 폭등하며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옛 직장 선배는 늘 뭔가를 준비한다. 아침에 카풀을 하면 항상 커피를 준비해 운전자에게 전하고 카트에서 먹을 간식도 챙긴다. 초콜릿, 단팥빵, 소시지 등이다.

시간 관계로 식사를 못한 동반자가 간식으로 때울 수 있고 진행이 밀릴 때면 잡담과 함께 먹으면서 지루함을 달랜다. 골프 비용 절감에도 한몫한다. 골프장 커피 한 잔이 1만원이다.

무엇보다 정성이 갸륵하다. 작은 간식이라도 아침 일찍 나오려면 전날 준비해야 하고 새벽에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는 데에도 손길이 간다.

시간을 잘 지키는 골퍼도 일단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카풀을 하면 적어도 10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골프 시간을 지키는 것도 습관이라는 생각이다. 늘 정시에 맞추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 부류가 있다.

골프장에도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준비한다. 레스토랑이나 식사 장소에 가면 늘 먼저 와 있다. 적어도 본인 때문에 동반자들이 기다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듯하다.

출발 카트에도 일찍 도착해 있다. 혹시라도 동반자의 리듬을 끊고 이동과 진행에 조금이라도 차질을 주지 않도록 배려한다.

골프를 끝내고 샤워 후 레스토랑 등 식사 장소에도 늦지 않게 도착한다. 다른 사람을 재촉하지도 않고 본인의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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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을 절제하는 매너 있는 골퍼는 모든 동반자가 좋아한다. 이들은 5시간 동안 18홀을 돌면서 행동과 말에 일절 군더더기가 없다.

본인이 복수로 클럽을 챙겨 나가고 순서에 따라 지체 없이 자신의 샷 동작에 들어간다. 그린에 올라가면서 경사와 방향을 미리 읽어 본인에게 허용된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동반자가 사용할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서다.

한 고교 동기는 이런 습관이 철저하게 몸에 뱄다. 티에 공을 올려놓고 후방에서 에이밍한 후 셋업하고 바로 클럽을 휘두른다. '연습 스윙'이 없다.

동작에 군살이 하나도 없다. 그린에서 마크하고 공 닦는 것은 물론이고 라인 읽는 것도 철저하게 본인 몫이다.

OB(아웃 오브 바운즈)를 내거나 짧은 퍼트에 실패해도 허공을 향해 울부짖거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학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캐디를 압박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도 않는다.

그와 함께 골프를 치다 보면 짧고 산뜻한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스윙도 멋지고 말끔한 플레이가 신선하다.

뭐니 뭐니 해도 골프장에서 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성격 좋은 호구가 꼽힌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와서 "오늘은 왠지 잘될 것 같아"라면서 OB를 내거나 더블 파를 해도 "운이 없어서 그렇다"며 허허 웃고 넘긴다.

"다음번엔 혼날 줄 알아"라고 말하면서 역시 매번 마찬가지로 지면서도 "허허허" 웃어 넘기고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는다.

나는 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승부욕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호구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고수다. 사랑해요 호구형!

"골프 실력만 우수하다고 훌륭한 골퍼로 인정받지는 않아요. 자신의 경기에 진지하게 임하면서도 동반자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게 관건이죠."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이 말하는 사랑받는 골퍼의 조건이다. 실력보단 어떤 형태로든지 동반자들에게 기여하고 헌신하는 골퍼가 사랑받는다고 한다.

60대 후반으로 접어든 한 지인은 나이가 들면서 멤버 구성이 힘들다고 말한다. 골프는 치고 싶은데 함께 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골프를 치고 싶다. 스포츠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연습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랑은 헌신에서 나온다.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아버지 뒤마)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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