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관요(官窯)를 부활하라! 도자기 작가 박춘숙

입력 2020/12/18 03:01
수정 2020/12/18 05:04
[요요 미술기행-64] 응향(凝香) 박춘숙은 유아 시기를 막 벗어나면서 점토를 가지고 놀았다. 외할머니에게 배웠다. 어머니는 미술 교사이며 목탄으로 작업하는 회화 작가이다. 전주 출신으로 1950년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부친은 외동딸이 원하는 무엇이든 거절하거나 부정해 본 적이 없다. 계란을 품고 자면 병아리가 나올 수 있다 믿고 아랫목에서 하루를 꼬박 지내는 것도 만류하지 않았다. 중·고교시절 옹기장이를 찾았다. 어린 시절 본 작은 막사발을 옹기 크기로 만들 생각을 해 보았다. 부친은 딸이 하는 다양한 경험들이 스스로 행복한 삶의 길잡이가 되길 바랄뿐이었다.

박춘숙 작가


박춘숙은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오페라에서의 프리마돈나, 디바를 꿈꾸었다. 1970년대 후반 연세대 성악과 2학년 재학 중에 부친이 돌아가셨다. 충격으로 미성의 목소리를 잃었다. 그녀는 성악, 곡 해석, 작곡 등 음악도의 꿈을 포기했다. 위엄, 함성, 승리의 환희로 해석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젊은 시절 기억의 저장고에 체화시켜야 했다. 영화 '타인의 삶' '작가 미상'의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르스마르크는, "위대한 예술은 작가의 삶이 깊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도자기는 현대 미술이 갖고 있는 모든 테크닉이 다 들어가 있다. 서로 파장이 다른 색, 빛, 온도에 따른 컬러의 변화, 파낸 홈에 다른 흙으로 메우고 유약을 바르는 과정은 조각적이며 회화적이다. 조각과 회화의 어울림은 칼질과 붓질이 어울려야 한다. 도자기는 가장 일차적인 조각이다. 그 여백과 매스(덩어리) 조각을 하다보면 공간과 여백을 알게 된다.

지난 봄, 응향원을 세 번째 방문하고서야 보리는 대체로 꼿꼿이 서고, 억새는 누워 날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봄날 달밤의 보리밭, 소리 없이 흔들리는 보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분명 그 달밤의 보리들은 제각각 춤추는 그대로 모습이어야 했다. 캄캄한 밤 산등성이, 언덕 길모퉁이 언저리에 제멋대로 모여 있는 억새의 고즈넉한 쓸쓸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무던히 대나무와 난을 치는 획 연습을 했다. 달밤의 흑갈색을 표현하기 위해 유약과 불 조절에 애를 쓰며 밤을 지새웠다.

보리와 억새는 박춘숙의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제자들에게 바람 부는 보리 밭에 하루를 앉아 있어보라 한다. 달빛 아래 춤추는 보리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들은 소위 보리알을 어떻게 까는지만 배우려고 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와 보리를 유약 바른 도토(陶土) 표면에 새겨넣기 위해서는 사군자의 필선이 나와야 한다. 필선은 정신에서 몸으로 옮겨온다.

대웅-보리 /사진제공=박춘숙 작가


박춘숙 작가는 관요(官窯) 부활을 주장한다. 한반도 땅은 오랜 전통의 관요가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설치 운영되었다. 관요 조직은 감관을 비롯하여 경영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와 실제 제조를 하는 사기장, 사기 번조(燔造)를 위한 잡역으로 나뉘어 철저히 분업화되어 제조·운영되었다. 관요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작가의 서명이 없다. 집단 창작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업주의 체제에서는 고려의 청자나 조선의 백자 같은 도자기 황금 시대의 걸작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도 사요(私窯)에서는 최고의 작품이 나온 적이 없다. 그가 주장하는 관요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 한국 도자기는 외부 요인보다는 자체 붕괴했다고 본다.

학교에서든 자신이 운영하는 횡성 응향원에서든 학생·제자는 대체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가르치는 사람은 박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스승과 제자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엄격했던 도제 시스템은 스승은 가장 중요한 유약 데이터를 제자에게 주는 게 또 다른 경쟁자를 낳는다 생각하고, 제자는 정신과 혼을 배우려 하지 않고 기술, 테크닉, 잔재주만 배우려는 이해관계로 변질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같은 곳이 설립되었으면 한다. 소정의 심사와 절차를 거쳐 입주하고, 관은 재료를 제공하며 작가는 작업한 작품 일부를 놓고 나오는 방식이다. 다른 작가들과의 분업화가 되어 있기에 혁신이 가능하다고 본다. 현대판 창작스튜디오인 관요는 반드시 흙이 나는 곳에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현대는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도예 작가들은 생래적으로 자연친화적이기에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대웅-마릴린먼로 /사진제공=박춘숙 작가


관요 시스템 도입은 조선 백자 부활과도 관련된다. 흙은 썩지 않는다. 경기도 이천 만권당에는 일본 지질학자들이 조사 연구한 지역별, 등고선별 흙 성분이 표기된 책들이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당대 흙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의 지질을 정밀하게 조사했다.

외부의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해 특유의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는 백자와 청자에 필수적인 도토와 청자토는 전북 지역에 많으며 유약의 숨은 원료인 칼리장석은 전남 순천 지역에서만 나는 것으로 알려진다. 칼리장석이 나오는 지역은 물이 좋다. 타 지역은 한반도의 지형상 동쪽에서 물이 나와 서쪽으로 흐르는데(東出西流) 반해, 이 지역은 서쪽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른다.

박춘숙은 도자기 산업화를 위해 '한국 도자기 공사'가 생기면 월급을 받는 도공으로 전환되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관요 부활은 작가들의 다양한 개성을 살릴 수 있어 좋다. 분업이 가능해진다. 흙쟁이, 유약쟁이, 불을 다루는 화공끼리 지혜를 짜낼 수 있다. 모든 창조는 모방부터 시작한다. 그 모방의 끝은 새로운 창조이다. 작가들은 몰입해 칩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불과 흙을 갖고 가장 자유롭게 노는 게 도자기이기에 얼마든지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능하다.

요강을 선물한 적이 있으나 상대는 받기를 주저했다. 가마에서 나올 때 오물통이지 않았다. 요강은 예전부터 혼수품이다. 우리 사회는 그릇에 대한 인식이 자유롭지 않다. 장작 가마, 물레 등의 방식이 정통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발로 물레를 돌리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달항아리는 대부분 상반과 하반을 붙여서 작업한다. 단 한 번의 물레질로는 형태가 무너져 내린다. 기술이 부족하여 등장한 형태미를 문화로 오도하면 안 된다. 물레 작업은 호흡이다. 자신에게 맞는 물레질을 배워야 한다.

다완 /사진제공=박춘숙 작가


대부분의 작가들이 유약을 도재상으로부터 사온다. 도재상들은 정확한 재료 표기를 하지 않는다. 박춘숙은 천연 재유 작가이다. 옥수숫대, 볏집과 각종 나무를 태운 잿물로 만든 천연 재료를 직접 만들어 작업한다. 일본 유약도 사다 쓰면서, 세계 최대 다완시장인 일본 공략을 위해 특화한 작품을 왜색이 난다 비난한다. 신사(神社)에 놓일 다완은 가볍고 단아해야 한다. 다완은 지역 전통 문화와 직접 관련 있다. 커피 왕국이 되어버린 한국은 제대로 된 다완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국내에서는 자연 흙을 구하기가 힘들다. 일본 도자기의 성지인 사가현(佐賀縣) 아리타(有田)에서는 제주 옹기토 등 한국 흙을 구할 수 있다. 업계 종사자들이 흙을 파서 재료로 일본에 공급한다는 얘기이다. 최소한의 윤리, 정신이 무너졌다.

도자 작가들은 대체로 미술의 타 장르보다 은퇴 시기가 빠르다. 흙과 불을 다루는 예술이기에 고되다. 무엇을 전승한다는 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 흔적을 애호가들이나 후학들이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그들의 몫이다. 박춘숙은 인간으로서의 삶은 파란만장했으나 작가로서는 성공했다. 자신을 뛰어넘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간단치 않은 제자도 길렀다. 작가는 많이 지쳤으나 자신이 살아오고 넘나든 시대와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을 했고, 이제 평화로운 귀향을 꿈꾼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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