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시간 여행자·자주인(自主人), 화가 박유아

입력 2020/12/24 04:06
수정 2020/12/24 04:20
[요요 미술기행-65] 선입견과 편견, 소문은 사람을 흐릿하게 한다. 화가 박유아(Yooah Park) 자신은 의식을 했든 하지 않았든 '화가'라는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듯하다. 그 애 쓴 흔적은 오롯이 작품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방역단계 격상으로 개회가 연기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단순한 진심: 51 Lives. Candid Essence'전을 위해 걸린 작품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선 작가의 화업 경력부터 짚었다. 그녀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이화여대 동양화과, 동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어진(御眞)의 맥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일랑 이종상에게 배운 직계 제자이다. 어머니는 미술을 잘 몰랐지만 우리 것을 알아야 남의 것도 배우고 흡수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건 초등학생이 당대, 조선시대로 치면 도화서(圖畵署) 수석화가에게서 직접 배운 셈이다. 일랑의 제자 단련 과정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2006년 서울 동산방화랑에서 박유아는 일랑의 직계인 김선두, 박성태와 3인전을 가졌다. 전통 지필묵의 필획을 입체적인 공간 속에서 재해석한 '鐵筆(철필)의 韻香(운향)'전이었다. 김선두는 철판에 레이저로 음각한 작품을, 박유아는 양각, 박성태는 나무망치로 두드려 만든 철망 작품을 선보였다.

73/74 SDN, 2020 (61×46×4㎝, 장지에 분채) , 70/78 US, 2019(61 x 46 x 4cm, 장지에 분채), 52/59 US, 2019,(61×41×4㎝, 장지에 분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초상 작품은 장지에 분채 물감을 수십 차례 입혀가며 칠한다. 칠할 때마다의 레이어는 모델이 살아온 세월을 드러낸다. 전통 동양화 기법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밑그림은 연필로, 서구 고전회화의 원근법, 조각 같은 사실적인 묘사와 같은 형식적 요소들도 대입한다. 한국에서 서양화로 기초를 닦았으면 뉴욕에서 경쟁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동·서양화 장르 이분법에 대한 개념, 의식 자체가 없다. 어떤 것이든 작품을 창작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1986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1991년 말 귀국한 후, 1997년 말 재이주해 여태껏 뉴욕에서 살고 있다. 첫 이주 다음해 컬럼비아대학원에서는 드로잉을 배우기 시작했다. 드로잉(drawing)은 종이에다 하는 모든 작업을 일컫는다.

이주 첫해 이론을 배우기 위해 입학한 하바드대를 포함해 교과 과정은 자유로웠다. 교수들은 '내가 뭘 도와줄까? 뭐가 불편한데?'라며 다가왔다. 새삼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강해졌다.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알 듯했다. 분야가 무엇이든 창의력이 충분히 개발되면 쓸 데는 많을 듯했다. 미국의 대학은 리서치하는 곳이다.

4/88 ASTRL, 2020(61×46×4㎝, 장지에 분채), 60/60 US, 2019(61×46×4㎝, 장지에 분채), 77/78 FRNC, 2020(61×46×4㎝, 장지에 분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입양아 시리즈는 한국계 영화감독인 글렌 모리 부부가 제작한, 7개 국가 16개 도시에서 6개 언어를 쓰는 한인 입양인 100인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Side by Side)'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생의 출발은 한국에서 했으나 얼굴이나 사고 등 모든 것이 한국인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갔다 나오는 작업 과정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마치 무당이 각자의 고달픈 삶을 살풀이해주듯 해서이다. 초상을 작업하는 화가들은 종종 사람의 얼굴 형상 이면을 들여다보는 본능 때문에 접신(接神)의 경계에 이르기도 한다. 작업실인 뉴욕의 맨하튼 집은 번잡할 수밖에 없다. 작품들은 완성되면 한 점 한 점 벽면에 붙여 나갔다.

박유아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규정짓지 않는다. 모든 작업의 모티프는 궁금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작업 전개 과정 자체를 즐긴다. 한인 해외 입양인의 전기적 서사에 대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애초 남편 공부 때문에 이주했지만 한국을 가끔 오가면서도 이민자의 삶을 선택한 경계인이기 때문이다.

입양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는 조금도 없이 타인에 의해 선택되어진 삶들이다. 작가는 이들 모두가 엄청난 드라마를 갖고 있으며 전 세계 모든 문제의 축소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초상 이미지로 드러나는 삶들을 들여다보면서 공감하게 되었고, 자신도 힘들었다. 그들의 삶은 얼굴에서 보인다. 임의로 여러 요소가 섞인 얼굴 모습이 무엇일까. '이건 뭐지' '표현할 수단이 없을까'. 흐르는 영상에서 본 모습들을 정지된 이미지로 고착시켜 보았다. '이건 그려야 돼'라는 확신이 왔다.

무엇이 되어 나올지 몰랐으나 수십 명의 초상에는 공통점이 보였다. 그게 재미있었다. 자신이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보였다. 성인이 된 자녀를 가진 어머니의 시각, 훨씬 연배가 많은 이들을 포함한 모성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해서 50여 명의 초상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번 전시 작품 중 일부는 지난 9월 여수국제미술제에도 출품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은 신혼일 것이다. 신랑, 신부 얼굴에 하얀 분칠이 칠해져 있다. 또 다른 작품은 남녀가 우아하게 차려진 테이블을 마주 두고 앉아있다. 이상한 것은 식탁 너머 벽면이 붉게 칠해져 있다. 자신의 가족사와 관련한 작품을 출품한 것은, 작품의 모델들과 함께 전시에 참여하며 그들의 삶에 일시적이라도 함께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실제 모델 중 상당수가 서울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걸 안다.

작품을 설명하는 캡션에는 '장지에 분채, 경면주사, 아교'라고 표기되어 있다. 경면주사가 무엇인지 물었다. 경주 인근에서 나는 광물질이다. 도장 찍는 인주를 만든다. 종결이다. 법적인 남녀 관계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걸 상징한다. 예술을 모르는 이들도 남녀관계가 끝나면 주고받은 편지를 태우든가 사진을 찢어버리는 퍼포먼스 아닌 퍼포먼스를 한다. 예술가로서 그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Mr. & Mrs. Koh Ⅰ, 2013 (72×100㎝, 장지에 분채, 경면주사, 아교) Mr. & Mrs. Koh Ⅱ, 2013(62×46×5㎝, 장지에 분채, 아교)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식탁에 부모 형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생고기를 칼로 썰고 거울을 깨는 퍼포먼스를 했고 깨진 거울 그대로를 놔두어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고기는 피와 살,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를 상징한다. 퍼포먼스의 주제는 '효(孝)'이다. 아버지란 존재가 너무 컸기에 부담감 또한 컸다. 작품을 통해 소화하려 했다.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개념을 이 작품에 대입한다. 박유아가 생각하는 르상티망은 인간이 신에 대해 느끼는 이중적 감정이다. 한국 문화에 자식은 부모로부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이다. 관습대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가라는 의문이 왔다. 한국 사회는 '효'가 너무 강력하다. 긍정적 한계치를 벗어나 억압이나 권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작품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게 있다. 전시장이 아니었으면 중산층 가정의 식당이었을 만한 공간에 가족들을 초상화로 대신하고 식탁에 둘러앉은 작품이 가능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의식은 섞이게 마련이다. 그 모든 게 부모에게서 시작된다. 어쨌든 물리적 정신적 DNA의 출발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

르상티망-효 2012, 가변크기, 혼합재료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작가로서 다음 계획은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작업하려 한다. '어 궁금해' '만들어야 돼'라는 확신이 오면 그대로 작업으로 옮기려고 한다. 이러한 실천적 삶은 '사고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하나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초상 연작 작업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당위성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관객의 예술가에 대한 시선은 출생, 교육 등 사회 계급적 위상을 벗겨내야 스스로의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수 있다.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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