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뉴욕 구겐하임을 겨냥하는 K아트 선두주자 김강용(下)

입력 2020/12/31 07:00
수정 2020/12/31 08:55
[요요 미술기행-67] 그에게 화면에서의 단위 요소는 모래로 출발하나 형태는 벽돌을 연상시키는 스퀘어(square), 육면체의 직방형이다. 직방형 벽돌은 독일 바우하우스와 같은 모더니즘의 상징이다. 모더니즘은 1차 세계 대전으로 파괴된 도시, 다 같이 가난해진 국민들에게 빠른 시간에 표준 주택을 중심으로 삶의 근간을 공급하는 효율성을 근간으로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60~70년대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을 제 1의 가치로 내세운 모더니즘이 성행하던 시대이다. 직방형 벽돌은 '경제 성장', '평등한 삶'의 보편적 글로벌 시각적 코드이다.

현실+장, 80-3, mixed media, 122×146cm, 1980 /사진 제공 = 김강용 작가




현실을 은유하고 비판하는 팝아트는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태동한 뒤 1960년대 미국에서 꽃핀다. 앞선 시대 추상표현주의가 개인적 작품 형식을 추구했다면, 팝아트는 대중적(popular)인 특성을 지녔다.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 ~ 2011)은 팝아트를 '일시적이고,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고, 상업적인' 미술 양식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온통 대량 소비 시대 상품으로 넘쳐난다. 대상(對象)인 상품을 '발견된 오브제(objet trouve)'라고 부른다. 팝아트는 동시대를 반영하기에 풍속화이면서 역사화이기도 하다.

한국전쟁둥이인 김강용의 작품 세계는 한국의 현대화,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작가가 대학을 다니고 군에 복무한 1970년대는 조국근대화라는 계몽적 서사가 팽배한 시기이다. 서울 도심과 근교를 포함, 전 국토가 공사장 천지였다. 건자재 중에서도 회벽돌이 눈에 띠었다.

벽돌은 세계 어디서나 재료를 달리해 생산되었다. 기원전 고대 로마의 원로원, 도로망, 수로 개설에 쓰였다. 중국 대륙에 구축된 만리장성, 프랑스 남부, 터키, 인도 등. 형태적으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벽돌은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살다 간 도시를 기억하는 매개이며 시간을 뛰어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철근과 콘트리트, 유리가 거리의 풍경으로 등장한 1980∼90년대 김강용 작품에서 모래로 표현한 벽돌이 본격적으로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에게 모래와 벽돌은 동시대를 살아오며 느낀 바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코드이자 매개이다.

2000년대 이후엔 모래벽돌 작업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단계로 도약한다. 모노톤 작품에 칼라가 대입된다. 모티프는 주변에서 보는 장소와 시대, 역사를 기억하도록 표현된 풍경이었다. 2000년대 중반 뉴욕 맨해튼에도 20세기초 건립된 벽돌 건물들이 즐비했다. 고층 빌딩을 새로 지을 때도 기존 건물 입면은 남기고 현대식 타워를 철거한 자리에 집어넣는 식이었다.

그동안의 작업은 평면에 입방면체인 벽돌의 재질감을 살린 재료를 밀어넣듯이 미장으로 바르듯 하고, 빛의 파장과 각도에 따라 음영을 붓으로 그려넣었다. 최근 작업은 마치 벽체 부실 공사를 한 듯이 벽돌 라인이 하단으로 굴곡이 진다. 배불뚝이처럼 라인이 축 처진 작품들이다.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기단에서 위로 올라가는 벽돌이, 위에서 아래로 마치 커튼이 처지듯 펼쳐지다가 마침내 '무너지지' 않고 사람의 뱃살처럼 '처진다'는 것은 화폭 속에서 대상의 물리적 속성, 사람의 시각적 관점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현실+상, 1810-1620, mixed media, 162×130㎝, 2018 /사진 제공 = 김강용 작가




신작은 횡을 가로지른 평면에 마치 벽돌이 성 안에서 바깥으로 성벽을 구축하듯이 빙 둘러싸는 듯한 모습으로 형태와 매스를 가진 입체가 평면에 삐집고 자리잡은 듯한 모습이다.

화면 구도, 디자인 및 시점(視點) 등 화면 자체의 조형성을 중시하기 시작한다. 2차원 평면에 가득한 벽돌은 쌓인 채 90도로 기울어 물리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구도다. 시점의 상하, 좌우 이동에 따라 이미지가 달리 보인다. 재현적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실재 즉, 시뮬라크르(simulacre)를 거쳐 개념적 작업으로 전환되었다. 90년대 이후 '현실+장(場)'(Reality+Place)에서 '현실+상(像)'(Reality+Image)'연작으로 이동하였다. 그림의 대상이 놓인 장소성에서 탈피하면서 '김강용 스타일'(KIM KANGYONG STYLE)이 정착된다.

'김강용 스타일'은 무엇인가? 60~70년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공산품들은 수돗물을 공용으로 받아 쓰던 뻘건 대형 플라스틱 물통, 바가지, 대병짜리 맥주 등이다. 아직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배급되기 전이다. 이런 기물들 가운데 회벽돌은 대도시 인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공산품이었다. 간선도로 가로는 나무가 시멘트 전봇대로 교체 중이었다. 김강용에게 벽돌의 구성 요소인 모래는 '발견된 오브제'이다. 캔버스에 접착제와 혼합한 모래를 접착한 뒤 벽돌 형상을 그린다. 회화의 일반적 재료인 점액질 물성인 오일이나 아크릴은 보조재일 뿐이다.

현실+상, 808-942, mixed media, 130×162㎝, 2008 /사진 제공 =김강용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 )는 '형태가 보테로 스타일을 결정'한 다. '전부 뚱뚱하게 그렸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모래와 벽돌이 김강용 스타일을 결정'한다. '김강용이 벽돌을 그렸다'는 표현은 틀렸다.

2000년대 시작된 한류의 중심에는 젊은 기획자, 공연 예술가들이 있었다. BTS, 블랙핑크의 등장으로 한류가 K팝으로 전이되었다. 공연 예술 K팝은 시각 예술 K아트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추상회화 즉 단색화는 글로벌 보편적 시각 코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K아트 선상에 소위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감강용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일부 작고 작가와 노장은 확장된 내수 시장인 홍콩주재 국내 경매 회사에서 작품 가격이 키워졌다. 진정한 국제 경쟁력은 아니다.

이미지+상, 1512-1600, mixed media, 70×70㎝, 2015/ 사진 제공 =김강용 작가




지난 성곡 전시에서 평범한 듯 보이는 병렬한 각 300호 짜리 작품은, 대찰(大刹)에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을 일깨우는 천왕문(天王門) 양편으로 기립한 사천왕을 보는듯 압도적인 입체의 매스로 다가왔다. 전시에 선 보였던 10여년전 작업한 직육면체의 입체는 흐르는 곡면(curved surface) 입체가 작품(배불뚝이)과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벌 작가는 협업 시스템도 잘 갖추어야 한다.

이번 성곡 미술관 전시가 계기가 되어 스위스와 미국 뉴욕의 갤러리가 전시 초대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제공 의사를 타진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도 초대 의사를 밝혔다.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있다.

명품 와인은 재배지의 토양 및 환경(terroir)에 직접 영향받는다. 작가 또한 자신이 나고 살아온 공간과 시간대를 거부할 수 없다. 작가 김강용은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 사는 에고이스트가 아니다. 곧 도래할 거대한 K아트의 물꼬를 틀 따름이다.

[심정택 작가]

*미술기행 연재를 마칩니다. 매일경제, 애독자, 작가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