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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는 언제나 그의 음악과 함께 나타났다[죽은 예술가의 사회]

입력 2021.01.09 15:01:00 수정 2021.01.09 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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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67] 엔니오 모리코네 (작곡가, 1928~2020)

엔니오 모리코네 /사진 제공=AP/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엔니오 모리코네 /사진 제공=AP/연합뉴스 ◆ 끔찍한 영화에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은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1975년 이탈리아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만든 이 작품은 '충격적인 영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영화는 권력을 쥔 귀족이 젊은 남녀 수십 명을 납치해 그들을 학대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기이한 고문이 나열된다. 파솔리니가 이 작품을 찍은 이유는 파시스트가 지배하는 세상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잔혹 우화다. 감독은 영화를 찍은 직후 살해됐다. 범인은 17세 소년이었다. 처형됐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끔찍하게 당했다. 단독 범죄로 보기 힘든 정황이 많았다. 좌파 예술가였던 파솔리니 죽음에 파시스트 세력이 가담했으리란 소문이 돌았다. 감독의 죽음까지 겹치며 '살로 소돔의 120일' 악명은 더 높아졌다.

이 모든 비극에도 영화에 삽입된 음악은 아름답다. 오프닝 장면에 흐르는 선율은 지중해 햇살처럼 평온함이 가득하다. 파솔리니는 음악감독에게 영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작곡을 의뢰했다. 음악감독은 완성된 영화를 본 후 "이런 작품이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음악은 제 역할을 했다. 지옥 같은 영화에 깔린 평화로운 선율은 그 이질감 때문에 강렬하다. 아름답기 때문에 무섭다. 영화 사상 가장 끔찍한 작품에 봄 햇살 같은 음악을 심은 이 예술가는 엔니오 모리코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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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코네에게 아카데미 음악상 영광을 안겨준 영화 '헤이트풀8' /사진 제공=다음영화 ◆ 88세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처음 받았다

'살로 소돔의 120일'로부터 40년이 흘러 2015년이 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헤이트풀8'이 개봉했다. 오프닝부터 살벌하다. 설원 한복판에 세워진 목각 예수상을 비추며 시작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하얀 눈을 뒤집어썼다. 설원 저 멀리서 마차가 다가온다. 사나운 눈보라를 겨우 헤쳐나가는 마차는 불안해 보인다. 이 영화는 설원에 갇힌 여덟 명이 벌이는 광기의 밤을 다룬 작품이다.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오프닝은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 이 긴장을 키운 건 9할이 음악이다. 불길한 에너지로 가득한 사운드가 설원을 채운다.

'헤이트풀8' 음악은 모리코네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90세를 앞둔 거장은 수상 무대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 모리코네는 자신과 함께 후보에 오른 존 윌리엄스를 언급하며 찬사를 보냈다. 윌리엄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오래 합을 맞춘 영화음악 거장이며 아카데미 음악상만 다섯 번 받았다. 모리코네 수상 소식에 전 세계 영화계는 위대한 음악가가 마땅한 상을 받았다며 박수를 보냈다. 아카데미를 향한 아쉬운 소리도 쏟아졌다. 왜 이제야 아카데미가 모리코네 손을 들어줬느냐는 것이다. 모리코네 업적을 생각하면 그가 88세에 첫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아카데미가 고령이 된 거장에게 구색 맞추듯 트로피를 안긴 것처럼 보였다. 수십 년을 영화음악 황제로 불린 이 예술가는 왜 아카데미에서 선택받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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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한 장면. 모리코네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명성을 얻었다. /사진 제공=다음영화◆ 스파게티 웨스턴의 탄생

모리코네는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모리코네도 음악가 길을 걸었다. 모리코네는 정식으로 연주자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세상 전체가 살얼음판 같았던 시기에 소년기를 보냈다.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정권이 장악했다. 2차 세계대전까지 터졌다. 이탈리아는 연합군과 독일군에 번갈아 짓밟혔다. 전쟁은 끝났고, 모리코네는 살아남았다. 그는 더 깊게 음악을 배우려 연주자에서 작곡가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1956년 마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자식도 낳았다. 모리코네는 자신을 바라봤다. 거기엔 가족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가장이 있었다. 돈이 필요했던 모리코네는 대중음악에 뛰어들었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꽃을 피웠다. 모리코네는 의도치 않게 대중음악 편곡자로 이름을 알렸다. 1961년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제작했다. 그리고 세르조 레오네를 만났다.

모리코네와 레오네 콤비를 이야기하려면 웨스턴 영화부터 짚어야 한다. 웨스턴 영화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카우보이, 무법자, 현상금 사냥꾼, 인디언이 황야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할리우드는 20세기 초부터 1950년대까지 서부극을 쏟아냈다. 역사가 짧은 미국인에게는 신화가 필요했고, 서부극은 신화를 제공했다. 서부극 주인공은 백인이다. 그들은 영웅이었다. 백인 총잡이는 야만인에 가까운 악당을 물리쳤다. 악당 대부분은 인디언이었다. 여기엔 '문명의 힘을 지닌 백인이 야만인을 물리치며 서부를 개척했기에 미국이 탄생했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오늘날 눈으로 보면 인종차별 요소가 수두룩하다.

1960년대 들어 서부극 인기가 꺾였다. 권선징악 서사가 반복되자 관객은 지루함을 느꼈다. 이 틈에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이 탄생했다. 이탈리아 감독들은 미국 서부와 풍경이 비슷한 스페인 황무지에 가서 웨스턴 영화를 찍었다. 서부극 인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 한 줌의 콩고물이라도 얻기 위해서였다. 저예산 서부극이 쏟아졌다. 할리우드는 이탈리아인이 만드는 서부극을 비웃었다. '이탈리아인이 미국 역사에 관한 영화를 스페인에서 찍는다고?' 이탈리아 서부극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불렸다. 조롱의 뉘앙스가 담긴 용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파게티 웨스턴은 할리우드 정통 서부극 이상 지위를 얻었다. 이 역전의 일등 공신이 레오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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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한 장면. /사진 제공=다음영화◆ 향수를 자극하는 '시네마 천국' 음악

스파게티 웨스턴은 자신만의 문법을 만들었다. 영웅은 사라졌다. 이 황야에 정의는 없다. 나쁜 놈, 덜 나쁜 놈만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서부 개척 시대의 비정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죽느냐, 사느냐가 전부다. 장르 영화 재미를 극대화한 스파게티 웨스턴은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레오네 감독은 모리코네처럼 로마 출신이다.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로 스파게티 웨스턴 붐을 이끌었다. 그는 무명에 가까운 미국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이 배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레오네는 음악감독으로 모리코네를 기용했다. 모리코네를 모르는 사람도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에 흐르는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을 확률은 희박하다. 모리코네는 황야의 무미건조한 바람을 닮은 휘파람 소리로 영화를 가득 채웠다. 이 사운드는 서부영화 상징이 됐다.

영화의 성공으로 레오네는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아 미국으로 갔다. 이스트우드는 정통 서부극 스타 존 웨인을 대체하며 거물 배우가 됐다. 모리코네는 로마를 떠날 필요가 없었다. 전 세계 영화감독이 모리코네와 일하려 이탈리아를 찾았다. 레오네는 1984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내놨다. 이 영화는 폭력으로 물든 미국 현대사를 조명한 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번에도 음악은 모리코네가 맡았다. 영화는 노인이 된 주인공이 삶을 돌아보는 구조다. 주인공은 뉴욕 뒷골목 건달이었다. 그는 못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런 용서할 수 없는 인간조차 회한의 감정을 갖고 지켜보도록 만든다. 모두 모리코네 음악 덕분이다. 주인공이 꼬마였던 시절에 짝사랑하는 소녀가 춤 연습하는 모습을 몰래 보는 장면이 있다. 이때 흐르는 뭉클한 선율은 마법처럼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레오네 유작이다. 1989년 그는 새 영화를 준비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탈리아에선 레오네 뒤를 이을 영화감독 한 명이 떠올랐다. 그는 주세페 토르나토레였다. 막 서른을 넘긴 이 감독은 모리코네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시네마 천국'(1988)이 탄생했다. 시골 극장 영사기사 할아버지와 그를 따르는 꼬마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모리코네는 이 영화에 아름다운 생명력을 선물했다. 작품에 흐르는 따뜻한 선율은 관객을 아련함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세상 모든 것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봤던 어린 날이,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포근한 기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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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코네는 '미션'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사진 제공=다음영화◆ '시네마천국'은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도 못 올랐다

영화 '미션'(1987)은 모리코네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이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가브리엘이라는 신부가 남미에 들어가 원시 부족에게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고, 그들 편에 서서 싸우다 순교한다. 남미의 장엄한 풍광을 담은 영화는 종교적인 성스러움으로 가득하다. 하이라이트는 가브리엘이 부족 앞에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마저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다. 훗날 이 연주곡에 가사를 붙여 탄생한 곡이 '넬라 판타지아'다. 모리코네는 '미션'으로 1988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대다수가 그의 수상을 확신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모리코네를 선택하지 않았다. 영화계는 모리코네가 상을 도둑맞았다고 수군댔다. '시네마천국'은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아카데미가 '미국인 백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그 시절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다. 물론, 아카데미에도 모리코네는 거장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살며 영어도 못하는 모리코네는 미국인에게 거장인 동시에 이방인이었다. 모리코네라는 음악가의 태생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점도 평가절하 요인이었다. 보수적인 미국 영화계에선 여전히 이탈리아산 서부극을 천박한 장르로 봤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고전 할리우드 서부극이 자랑한 미국식 영웅주의를 비웃은 악당으로 취급받았다.

88세가 되기 전까지 아카데미로부터 외면받았지만, 모리코네는 오랫동안 존경받는 음악가의 삶을 살았다. 그는 거장다운 자존심을 지킨 예술가였다. 유럽에서 인정받은 영화인 대부분은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하지만 모리코네는 로마를 떠나지 않았다. 꾸준히 미국 영화인과 작업했지만,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지나치게 음악에 관여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모리코네는 자존심이 강했지만, 자만심에 취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값에 맞는 대작을 취사선택해 웅장한 음악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가 참여한 영화만 500여 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모리코네 작품 중에는 실험적인 음악도 많다. 그는 존경하는 음악가로 재즈 아티스트 마일스 데이비스를 꼽았다. 데이비스는 재즈 역사를 몇 번이나 바꾼 혁명가다. 모리코네는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데이비스처럼 눈감기 직전까지 새로운 음악을 구상했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이미지 크게보기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시네마 천국'. /사진 제공=다음영화◆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

지난해 7월 모리코네는 9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음악을 사랑한 사람들은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추억에 빠졌다. 누군가는 '석양의 무법자'에 흐르는 휘파람 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서부극을 보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던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봤을 테다. 누군가는 '미션'에 흐르는 숭고한 음악을 생각하며 거장을 추모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시네마 천국' 음악을 틀어놓고 아련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모리코네는 생전에 부고를 써 놨다. 첫 문장은 이렇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 항상 내 곁에 있는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친구에게 이를 알린다." 그는 친구, 자녀, 손녀, 손자를 언급하며 인사를 남겼다. 유언장 마지막 문장은 오랜 여정을 함께한 아내에게 바쳤다. "나는 당신에게 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꼈다. 이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이제 이를 단념할 수밖에 없어 정말 미안하다. 당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

모리코네는 떠났다. 그래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위대한 영화는 계속 탄생할 테고, 아름다운 영화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석양이 저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역사가 하나의 책이라면,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한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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