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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한마디에 상대 골퍼 백발백중 끝장

입력 2021.02.20 05:59:00 수정 2021.02.21 1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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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골프] "와, 전반에 1오버를 쳤네! 오늘 싱글은 물론 라이프 베스트까지 하겠다~."

간혹 전반 라운드를 마치고 식음료를 마시면서 동반자들이 스코어를 언급해 분위기를 띄운다. 그 순간 스코어를 의식하며 후반 플레이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원래 실력으로 돌아온다.

겉으론 칭찬이지만 실은 나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다. 칭찬으로 포장한 이중 심리다. 골프계 속어 '구치'는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미스 샷을 유도하는 방해전략이다.

일본어로 구치(くち)는 입을 뜻하는데 우리말로 입방아 정도로 보면 된다. 당구에서 쓰이는 '견제(牽制)하다'란 의미의 겐세이(けんせい)와 유사하다.

"골프는 예민한 스포츠이기에 상대의 취약한 심리를 이용해 오류를 유도하면 사실 매너가 아니죠. 물론 과하지 않다면 편한 사이에선 긴장과 재미를 유발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박영민 한국체대 골프학과 지도교수의 말이다. 가벼운 내기가 붙은 친구 사이에선 이런 견제구가 흥미를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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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골퍼는 16번 홀까지 싱글 타수를 기록하면 긴장이 고조되고 맥박도 빨라진다. 여기에다 동반자가 "두 홀만 잘 치면 오늘은 완전 싱글"이라는 말을 건네면서 기름을 붇는다.

두 홀만 파로 막아내면 되는데 바로 보기나 더블보기를 범해 결국 80대 타수로 넘어가 버린다. 필자도 숱하게 이런 경험을 맛보았다.

장타를 구사하며 홀을 거듭할수록 성적을 잘 내는 동반자에겐 "폼만 좋으면 완벽할텐데"란 말을 슬쩍 던지는 순간 티샷이 흔들린다. 그 말이 뇌리에 꽂혀 OB나 원하지 않은 구질로 이어진다.

큰 소리가 아니라 동반자끼리 소곤대듯 말하면 효과가 더블이다. 매너를 지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조용하게 전달돼야 더 흔들린다.

왼쪽이 OB구역, 오른쪽은 패널티구역(해저드)이라고 굳이 강조해도 영향을 받는다. 초보자는 불안감에 제 스윙을 못한다.

본인은 공을 잘 보내놓곤 "생각보다 왼쪽으로 많이 당겨지네"라는 말을 툭 던지는 순간 다음 동반자는 교란된다. 자신도 모르게 클럽 헤드를 열거나 힘을 빼고 가격해 슬라이스나 푸시 샷을 낸다.

페어웨이에서도 얼마든지 동반자를 말로 압박할 수 있다. 비슷한 선상에서 아이언 샷을 하면서 나에게 먼저 치라고 순서를 양보할 때다.

예전에는 홀에서 먼거리 공의 주인이 먼저 샷을 했지만 2019년 개정룰에 따라 준비된 골퍼부터 샷을 한다. 얼핏 나에게 샷을 양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도의 심리전일 수도 있다. 양보를 받은 나는 상대가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 샷을 끝내야 하겠다는 압박에 직면한다.

순서에 대한 양보를 속도로 보답하겠다는 심리인데 영락없이 토핑이나 뒤땅(팻샷)으로 연결된다. 서두르는데 좋은 샷이 나올 리가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 상대 샷을 주시하는 것도 압박수단이다. 애매한 간격을 두고 "어떻게 치는지 보자"며 뚫어져라 응시하면 긴장된다.

상대방의 샷을 연속 칭찬하며 레슨을 유도하는 것도 무너지게 하려는 고도의 속임수다. 칭찬은 일단 자신을 낮추고 고수로 인정한다는 뜻인데 상대는 우쭐하면서 긴장을 푼다. 정작 레슨을 본인의 샷으로 입증하려다 실수를 범한다.

"골프는 너무 긴장해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면 곤란합니다. 몸과 멘탈을 건강한 긴장 사슬로 일체화해야 합니다."

서울 서초구 라온골프아카데미의 김명선 원장은 동반자에게 필드레슨은 자기 기량을 펼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내기가 붙었으면 끝까지 자기 플레이에만 몰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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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서도 압박은 펼쳐진다. "벙커샷의 달인"이라거나 "늘 네 벙커샷이 부럽다"는 말로 치켜세우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탈출을 못하거나 토핑으로 공을 날리기 일쑤다. 칭찬이 골프를 춤추게 하는 게 아니라 예민함만 자극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작전도 있다. 골프와는 상관없는 사업 근황이나 건강을 얘기하는 식이다. 한마디 대꾸 없이 입을 꾹 다물 수도 없어 응답하다 보면 집중력 분산으로 미스 샷이 나온다.

"스윙과 구질이 좀 달라진 것 같다"며 건강을 물어보거나 상대의 평소 고민거리를 살짝 건드리는 사람도 있다. 부담 없는 친구 사이에만 가능한 일이다. 상황 고려 없이 그랬다간 궂은 분위기로 치닫는다.

동반자를 가장 빈번하게 괴롭히는 곳은 그린이다. 핀까지의 방향과 경사, 그리고 스트로크 강도로 상대 퍼트를 교란시킨다.

퍼트를 끝내고 "생각보다 오르막(내리막)이 심하다거나 잘 구른다(구르지 않는다)"는 식으로 중얼거린다. 이 말을 들은 동반자의 퍼트가 제대로 되겠는가.

그린에선 성질 급한 사람이 가장 손해다. 퍼트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는 점을 악용해 항상 자기보다 먼저 치도록 유도하는 여우파도 있다.

골프에서 퍼트만큼 예민한 부분도 없다. 순서를 양보해 성급하게 퍼트를 유도하는 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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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동반자의 클럽이 좋아 보여 자기도 한번 쳐보겠다며 리듬을 끊는 부류도 있다. 주로 드라이버나 퍼트다.

프로경기에선 남의 클럽을 사용하면 2벌타다. 아마추어는 그냥 넘어가는데 경기 흐름을 끊는다.

직장 선배와 레이크사이드CC에서의 일이다. 황금색 헤드와 샤트프로 구성된 신형 드라이버를 갖고 나갔는데 비거리와 구질이 좋았다.

선배가 한 번 쳐보겠다고 해서 줬는데 헤드가 그냥 땅에 쓸리면서 도색에 흠이 나고 말았다. 내색을 못하고 라운드 내내 끙끙 앓다가 엉망의 스코어를 낸 기억이 난다.

새 차 운전대를 친구에게 맡겼다가 접촉사고를 당한 심정이었다. 이 후 내 클럽을 남이 사용하면 극도로 불안해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골프에서 친한 사이끼리 선을 넘지 않는 방해공작(구치)은 활력소가 된다. 무너지거나 이를 극복하는 것도 골프의 일부분이다.

워낙 예민한 경기여서 "컨시드(일명 OK) 빼곤 모두 구치"라는 말도 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극복해야 진정한 실력자다.

"골프는 멘탈 50%, 셋업 40%, 기술 10%"란 잭 니클라우스(81)의 말이 떠오른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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