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프리미엄

살인자가 된 천재화가…어둠과 광기의 시대를 기록했다

입력 2021/07/24 11:01
[죽은 예술가의 사회-81]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화가)

카라바조 자화상.


◆어둠의 마력


극장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편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가 정착한 지 오래다. 영화관에서 개봉 중인 작품도 결제만 하면 안방에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영화관이 설 자리는 줄어드는 중이다.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은 사실상 멸종이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대형 극장도 풍전등화 신세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꿋꿋하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다. 극장을 찾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홈시네마 장비가 발달하더라도 극장의 거대한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런 기술적인 요소 말고도 극장의 매력은 또 있다. 바로 어둠이다. 극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간 중 가장 어둡다. 빛 한 줄기도 허락하지 않는 극장은 동굴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은 깜깜한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입성하는 듯한 묘한 최면에 빠진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어둠이 선사하는 낯선 공기에 마음이 두둥실 뜬다.

어둠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어떤 마력이 있다. 마력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이상한 힘'이다. 극장처럼 어둠이 지닌 '이상한 힘'을 강력하게 발휘한 화가가 있었다. 이 예술가의 이름은 카라바조다. 그의 그림은 새까만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영화와 비슷하다. 카라바조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암흑 속에서 빛을 내뿜고 있다. 새까만 연극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연기하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유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4년 프랑스의 한 주택 다락방에서 발견된 카라바조의 그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개인 소장>


◆다락방에서 나온 2000억짜리 그림


2014년 4월,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있는 한 주택. 집주인은 누수 문제로 평소 문조차 열어보지 않았던 다락방을 수리했다. 그는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먼지 수북이 쌓인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가로 175㎝, 세로 144㎝인 거대한 그림이었다. 주인은 먼지를 툴툴 털고 그림을 확인했다. 거기엔 살벌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한 여성이 칼을 들고 잠들어 있는 남성의 목을 자르는 중이다. 언제, 어떤 경유로 이 그림이 다락방에 흘러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미술 전문가들은 이 그림을 이탈리아 거장 카라바조 작품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고 추정했다. 진품일 경우 감정가만 최소 1000억원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9년이 됐다. 이 작품은 경매에 오를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몸값은 더 올라서 낙찰가는 최대 1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경매 이틀 전 그림은 익명의 수집가에게 팔렸다. 정확히 얼마에 팔렸는지 알 수 없지만, 소유주가 경매를 안 거치고 처분한 점을 감안하면 1900억원 이상에 팔렸을 가능성이 높다.

다락방이라는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한 진주가 발견된 것이다. 이 그림의 운명은 화가의 삶과도 여러모로 닮았다. 카라바조 삶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의 인생을 영화로 비유하면 장르는 그림자가 짙게 깔린 누아르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범죄자였고 도망자였다. 예술사를 바꾼 몇 안되는 혁명가이면서도 한편으론 시정잡배였다. 그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지만, 다락방에서 나온 자신의 그림처럼 오랫동안 어둠에 파묻혀 있었다.



'메두사의 머리'(1595~1596) <우피치미술관 소장>


◆'일그러진 진주' 바로크


예술사는 투쟁의 역사다. 새로운 예술 사조는 지배적인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등장한다. 점점 세력을 키우고 반역을 도모한다. 15세기 이탈리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거대한 혁명이었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엄숙한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시대 정신을 부활시켰다. 그리스 정신은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 신은 인간의 이해로는 가늠할 수 없고, 가늠해서도 안되는 신성한 존재다. 하지만 그리스 신들은 어떤가.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질투하고, 슬픔을 느끼고, 실수도 저지른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신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을 부활시켰다. 그렇게 중세라는 캄캄한 세상이 막을 내렸다. 르네상스라는 빛의 시대가 개막했다.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 얼굴을 그린 '모나리자'도 예술로 인정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가는 신이 아닌 인간을 세상 중심에 놨다. 인간의 이성을 찬양하고, 과학기술의 진보를 두 팔 벌려 반겼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래서 화가이자 수학자였으며 과학자였다. 르네상스는 질서, 균형, 논리, 비례를 중시했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이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온 인물이 카라바조다. 그는 르네상스의 찬란한 빛에 의문을 제기했다. 카라바조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정말 아름다운가?' '인간은 완전한 존재인가?' '정말 암흑의 시대가 끝났는가?' 그리고 이런 의문을 가득 담은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이런 그림들은 바로크라고 불렸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미술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완전한 모양의 진주라면, 바로크 예술은 어딘가 불안하고 께름칙하게 일그러진 진주다. 카라바조는 왜 찬란한 빛이 내리쬐는 시대 속에서도 어둠에 집착했을까.



'의심하는 도마'(1601~1602) <포츠담 신궁전 소장>


◆어둠 그 자체였던 카라바조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후 7년 후인 1571년 이탈리아에서 또 다른 미켈란젤로가 탄생한다. 카라바조의 본명이 미켈란젤로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살다가는 동명이인의 거대한 그림자에 파묻힐 게 뻔했다. 그는 이름을 카라바조라고 바꿨다. 카라바조는 그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동네 이름이다. 카라바조의 유년 시절과 관련한 구체적인 역사 기록은 없다. 그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그림을 배웠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왜 그림을 그렸는지도 알 수 없다. 일찍이 전염병으로 부친을 잃고 형편이 어려워진 그는 아마도 먹고살기 위해 붓을 들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스무 살 무렵 무턱대고 로마에 입성했다. 화실을 떠돌며 허드렛일 하고 그림을 배웠다.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사람답게 밑바닥 삶을 살았다. 르네상스의 빛이 환하게 비추던 시대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류층 얘기였다. 카라바조가 살았던 빈민가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거기엔 도둑, 도박꾼, 깡패, 매춘부, 사기꾼이 득실거렸다. 이 비참한 인생끼리도 서로 속고 속이며 매일 전쟁을 치렀다. 또한 이성의 힘을 중시한 르네상스 시대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유럽 곳곳에선 버젓이 마녀사냥이 지속됐다. 광기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카라바조는 뒷골목 삶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의 성격은 르네상스와 정반대였다. 이성의 시대 속에서 카라바조는 종종 이성을 잃었다. 그는 시한폭탄과 같은 성격을 지닌 남자였다. 툭하면 사람들과 싸웠고, 불같이 화를 냈다. 사회 질서나 도덕도 비웃었다. 좋게 말하면 반항아였고, 나쁘게 말하면 건달이었다. 그의 성격이 포악해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인간도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악마의 재능이랄까.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사교성도 없지만, 카라바조는 그림으로 점점 인정을 받았다.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고 한눈에 반해 후원자를 자처한 사람이 등장했다. 이탈리아 귀족 가문과 친분이 두터웠던 델 몬테 추기경이었다. 그는 무명 화가였던 카라바조를 구원했다.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또 다른 후원자들을 소개해줬다. 카라바조는 마음 놓고 그림만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폭한 성격은 그대로였다. 틈만 나면 사람들과 치고받고 싸웠다. 후원자들은 짐승을 길들이듯 카라바조의 만행을 수습해줬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카라바조를 보호해줬을까. 이 포악한 화가의 그림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가 창조한 화풍은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불린다. 테네브리즘은 어둠과 빛의 대비를 극단적으로 활용한 회화 기법이다. 바로크 화풍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카라바조 그림은 어둡다. 그냥 어두운 게 아니라 암흑이다. 그는 이 암흑 중앙에 강렬한 빛을 삽입시킨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둠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이 그림에서 인물의 표정, 행동 그리고 지금 일어난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인물 주변은 온통 암흑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관심을 쏟도록 어둠으로 인물 주변 모든 걸 지워버린 것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09~1610) <보르게세미술관 소장>


◆도망자로 살다 떠났다


귀족 의뢰를 받고 일하는 화가답게 카라바조는 성서와 관련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그가 그린 종교화는 이상했다. 예수와 마리아 얼굴에는 신성함은커녕 피곤함이 가득했다. 행색도 초라했다. 예수를 둘러싼 사도들 역시 뒷골목에서 볼 수 있는 노동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라바조는 실제로 밑바닥 삶을 살 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건달, 사기꾼, 매춘부를 그림 안으로 초대했다. 보수적인 기독교 사회에선 카라바조 그림을 두고 "신성 모독이다"라며 공격했다. 하지만 이 발칙한 그림에 환호하는 사람도 많았다. 성스러움과 천박함이 아슬아슬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림에서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카라바조를 후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카라바조 그림에 르네상스가 외면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부각했고, 찬양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뒷골목에선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비극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카라바조는 이 어둠을 직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둠 안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아니, 본인 스스로가 어둠 그 자체였다. 기묘하고, 불안하고, 어딘가 일그러진 인간이 그린 이 그림들에는 마치 공포 영화처럼 압도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카라바조는 결국 대형 사고를 쳤다. 테니스 경기를 하다가 상대 선수와 점수 때문에 싸움이 붙었다. 이 다툼에서 카라바조 역시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상대는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는 후원자들도 손을 써줄 수 없었다. 카라바조는 곧장 로마를 떠났다. 현상수배범 신세로 이탈리아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도망자 신세였지만, 은신처에서도 계속 사람들과 다퉜다. 그렇게 떠돌이로 살다가 39세에 객사했다. 카라바조라는 어둠이 완전히 암전됐다.

그는 생전에 비록 짧지만 성공과 명예의 맛을 본 예술가였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자마자 그의 이름은 암흑 속에 봉인됐다. 300년 넘게 세상은 이 화가를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20세기가 돼서야 한 비평가의 노력으로 카라바조는 어둠으로부터 봉인 해제됐다. 이제는 미켈란젤로만큼이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의 지위를 누리는 중이다. 미켈란젤로가 빛을 상징하는 화가라면, 카라바조는 어둠의 대변자다.

카라바조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기 어렵다. 왜 그럴까. 사실 인간은 일그러진 진주에 더 가깝기 때문일 테다. 르네상스 예술은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그렸고 찬양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인간은 던적스럽다. 때론 카라바조처럼 포악한 이빨을 드러낼 때도 있다. 우리 안에는 모두 일정 정도의 어둠이 있다. 그리고 우린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어둠을 자주 응시한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극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어둠이 가진 이상한 힘을.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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